문화·스포츠 문화

[되돌아본 2014년 문화계] 상처난 마음 파파에 위로 받고… 갈등의 시대 영웅을 그리워하다







올 봄 세월호 사건으로 대한민국 압축성장 이면의 구조적 적폐와 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우리 국민은 비통해했다. 대한민국호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이어졌다. 그런 터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때 보여준 소통, 공감의 정신은 한국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우리는 영화 명량 신드롬에서 갈등과 혼란의 시대에 얼마나 진정한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불확실성과 상실의 시대에 인간의 삶과 애환을 진정성있게 그려낸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경영난으로 뮤지컬업체가 잇달아 문을 닫기도 했지만 도서정가제와 단색화 열풍 등으로 침체된 출판시장과 미술시장에 재도약과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이는 등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문화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깊은 감동·울림 남겨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천주교 신자·비신자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깊은 감동과 울림을 남겼다. 지난 수십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변화와 개혁의 과제들을 진정성 있게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교황은 물질주의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을 극복하라고 강조했다. 가난을 양산하고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 모델 또한 극복할 과제로 지적한 그는 연대와 공공선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물질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빈곤, 외로움, 남 모를 절망감에 고통 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장벽을 극복하고 분열을 치유하며 폭력과 편견을 거부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사태, 위안부 할머니 등 한국 사회·역사의 질곡과 갈등의 이슈들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방한 첫날 일성으로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던 그는 광화문 시복식 행사에서 34일째 단식 중이던 김영오씨를 위로했다. '세월호 십자가'를 짊어지고 900㎞ 전국 순례를 한 유가족에게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스스로를 낮추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교황의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소형차인 기아차 '쏘울'을 공식 의전 차량으로 지정하고 전용 헬기가 아닌 KTX를 타고 이동했다. 환영 인파에서 아기를 보면 차를 멈춰 입 맞추고, 아시아청년대회에서는 예정에 없던 30여분의 즉흥 연설을 했다. 최대 행사이던 시복식 행사에는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신도들 수십만명이 새벽 3시부터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교황을 보기 위해 몰려들며 장관을 연출했다.

'명량 신드롬' 1761만명 최다 관객 신기록

2014년 한국 영화계는 '명량'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영웅 부재의 시대, 이순신이라는 성웅이 치른 명량해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전 연령층 관객의 사랑을 고루 받으며 △개봉 당일 최다 관객 동원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달성 △역대 최대 관객 수인 1,761만명 동원이라는 진기록들을 써내려갔다. 1,000만 관객도 대단하다고 말하던 한국 영화계에 1,500만 관객의 시대를 연 셈이다. 영화의 매출액 역시 1,000억원 고지를 넘긴 1,357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금액을 벌어들였다. 성인 2명 중 한 명 꼴로 봤다는 영화는 대중문화계 전반에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순신 관련 서적이 불티나게 팔렸고 정·재계에서는 이순신 리더십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처리하는 정치인·공직자들의 모습이 이순신의 행적과 일일이 비교되기도 했으며 각종 칼럼과 방송, 강연 등에서 이순신의 언행이 수차례 인용됐다.

명량은 평소 극장 출입이 없던 중·장·노년층 남성 관객들을 대거 스크린 앞으로 불러모으며 한국 영화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까지 받지만, 지나치게 많은 스크린 수와 관객을 독차지하며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명량은 최대 1,586개의 상영관을 확보했었는데, 이는 국내 2,584개 스크린의 60%를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물론 개봉 첫 주 좌석 점유율이 80%에 달하고, 이후로도 50% 선을 계속 유지했던 인기 영화에 많은 스크린을 배정하는 것은 극장 측의 당연한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영화에 대한 대기업의 부족한 배려심은 '명량'이라는 걸출한 흥행작에 한 점 티끌로 남았다.

불황 직격탄… 뮤지컬제작사 경영난 몸살

세월호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뮤지컬 시장에선 제작사들의 경영난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중견 제작사 '뮤지컬 해븐'이 6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배우 오디션까지 마친 2편의 공연을 모두 취소했다. 7월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스태프 임금 체불로 공연 중단 사태를 빚었다. 제작사인 '비오엠 코리아' 측은 임금 지급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의 잠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대형 라이선스 작품을 들여오기 힘든 몇몇 중소형 제작사들 역시 세월호 추모 분위기 속에 시장이 얼어붙고 투자금 집행이 지연되자 하반기 예정했던 작품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꾸준히 흥행작을 올려온 제작사들이 잇따라 문을 닫거나 예정 공연이 차질을 빚으면서 업계에선 '곪은 상처가 드디어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뮤지컬 시장이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팽창한 가운데 공급 과잉과 스타마케팅에 따른 고액 출연료와 제작비 거품이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다수의 제작사가 특정 공연 투자금을 이전 작품의 적자나 빚 상환에 쏟아 부으며 뮤지컬 제작과 투자금 유치가 마치 '카드 돌려막기'나 '사채 갚기'로 변질한 것이다. 일련의 사태로 업계에선 과열 방지 및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콘텐츠로 승부" 도서정가제 확대

지난달 2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은 모든 도서가 예외 없이 정가 기준 15%(직접할인 10%+간접할인 5%) 넘게 할인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과도한 도서 할인 경쟁과 지역 중소서점 줄도산을 막아, 가격이 아닌 양질의 콘텐츠 경쟁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이전에는 신간이 19%(직접 10%+간접 9%)까지 할인 가능했고, 출간 후 1년 6개월이 지난 구간과 학습참고서·실용서 등은 아예 할인율 제한이 없었다. 따라서 일부에선 세트 도서나 실용서 카테고리 등록 등 편법을 동원해 가격을 낮춰 제도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개정안 시행 한 달째, 일부에서 우려했던 서점 매출 급감이나 책값 상승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본지와 교보문고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20여일 사이 신간 가격이 16% 넘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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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도서의 보급판(페이퍼백) 출간이 늘고 그간 할인율을 감안해 높게 책정된 가격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신간 종수가 40% 가까이 감소해 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혼재된 가운데, 실질적인 영향은 최소 6개월여 지켜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승승장구 'K드라마'… 별그대·미생 열풍

한류 열풍을 부른 이른바 'K드라마'의 약진은 올해도 이어졌다. 외계인과 톱스타 여배우의 사랑을 화려하게 그려낸 '별에서 온 그대'는 그야말로 신드롬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톱스타 천송이 역할을 맡은 전지현이 사용한 의류·액세서리·화장품 등이 매진 행진을 이어갔고, 도민준 역할을 맡은 김수현은 이 한 편의 드라마로 아시아의 별로 우뚝 섰다. 특히 드라마는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드라마가 언급되는가 하면, 천송이가 먹던 '치맥(치킨과 맥주)'까지 유행할 정도였다. 상반기 '별그대'가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미생' 열풍이 불었다.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를 중심으로 샐러리맨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드라마는 원작 웹툰의 탄탄한 스토리와 감성적인 연출이 어우러져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고,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시청률 10.3%를 달성하기도 했다. 특히 직장인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는데 회사에서 원작 만화를 돌려보는가 하면 직장인들 사이에선 '미생'을 보지 않으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윤태호 작가의 원작 만화 '미생' 역시 판매 부수가 200만부를 돌파해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됐다.

'진정성의 힘' 다큐 영화 선전

올해는 영화계 비주류로 꼽히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선전이 이어졌다. 무당 김금화의 인생 여정을 담은 '만신', 재일 조선학교 럭비부 학생들의 꿈을 그린 '60만번의 트라이', 말기암 환자들이 머무는 호스피스 병동을 소재로 한 '목숨' 등이 다양한 소재와 진정성 있는 연출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노부부의 사랑을 담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경우 개봉 한 달여 만에 관객 250만명을 돌파하며 '워낭소리' 이후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풍성한 비엔날레… 잡음도 이어져

세계 최고 권위의 비엔날레(격년제 국제예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조민석 커미셔너가 '한반도 오감도'를 주제로 꾸민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서울·광주·부산·대구·대전·창원 등 전국이 비엔날레로 풍성했지만 광주비엔날레는 특별전에 출품된 작가 홍성담의 정치풍자화를 둘러싼 논란이, 부산비엔날레는 전시감독 선정에 대한 파행이 오점을 남겼다.

가능성 보여준 국내 창작뮤지컬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흥행은 해외 라이선스 공연 위주의 국내 뮤지컬 시장에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충무아트홀이 제작비 40억 원을 들여 만든 이 작품은 한복·역사·국악 등 전통 소재에서 벗어나 소재와 내용의 신선함으로 승부, 8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에 성공하고 높은 좌석점유율에 힘입어 연장공연까지 펼쳤다.

숭례문 부실로 드러난 문화재 비리

지난해 완공된 숭례문의 복원 과정이 '총체적 부실'로 지목되면서 완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급 문화재 비리"라고까지 언급했다.

목재 분석을 담당한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단청부터 목재, 기와 등이 모조리 지적당했다. 문화재계 내부에서는 높은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고 결국 이 모든 사태의 책임자 격인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이 취임 8개월 만에 전격 경질됐다.

'단색화 바람'에 미술시장 회생

한국 출신의 이우환이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세계적 거장으로서 또한번 도약했다.

더불어 그가 속한 1970년대 한국 고유의 회화 사조인 '단색화'가 바젤 등 주요 아트페어에 소개돼 큰 주목 받았으며 한국문화원을 중심으로 중국·독일 등지에서 순회전도 열려 세계적 열풍을 일으켰다. 그 덕에 국내 미술 경매시장도 침체를 딛고 활기를 띠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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