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5년 만에 우승컵 안은 강욱순, "골프와 함께 살아온 것은 축복"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5년 동안 그 어떤 대회에서도 리더보드의 최상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세계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우승컵을 쓸어 모았지만 5년이 지난 후, 사람들은 그를 그저 왕년의 스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우승 행보는 끝나지 않았다. 단지 긴 슬럼프에 빠져있었을 뿐이었다. 긴 침묵의 시간 동안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치르고 마침내 승자가 되어 돌아온 강욱순(43, 삼성전자)의 골프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8월 조니워커블루라벨오픈 우승은 5년 만에 거둔 실로 뜻 깊은 우승이었다. 수상소감을 통해서도 ‘옛 생각이 많이 난다’는 감회를 피력했는데 경기에 임한 남다른 각오가 있었나? 한동안 운동을 하기 싫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승을 꼭 한 번 하고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이유로 작년 겨울 뉴질랜드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오래간만에 훈련도 다시 하게 됐고 심리적으로도 마음을 다잡게 됐다. 훈련의 성과는 금방 나타났다. 상반기에 부쩍 성적이 좋아졌고, 우승의 조짐도 느낄 수 있었다.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다른 사업을 준비하기도 하고 바쁘게 지내느라 훈련에 전념하지는 못했지만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서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확신은 하반기가 시작함과 동시에 우승으로 나타났다. 4라운드를 출발할 때 선두에 1타 뒤진 상태였다. 하지만 파5 16번홀에서 2온에 성공, 버디를 잡으며 우승을 눈앞에 두게 됐다. 오랜만의 우승이라 떨리지는 않았나? 4라운드를 시작할 때는 우승에 대한 각오나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한 타 뒤진 상황에서 티오프를 했기 때문에 라운드 내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16번홀에서 버디를 잡을 때까지도 다른 선수들의 스코어를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 홀에서 두 번째 샷을 치고 나서야 스코어보드 맨 위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는 긴장이 되고 떨리기도 했다. 마지막 파 퍼팅을 성공시키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족보다도 먼저 떠오른 것은 스폰서 관계자들이었다. 5년이라는 긴 슬럼프를 이겨내고 우승의 감격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스폰서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난 6월 필로스오픈에서도 놀라운 승부욕을 보이며 공동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마지막 날 라운드에서 아쉬움이 남지는 않았나? 필로스오픈에서는 특히 후반 뒷심이 아쉬웠다. 전반 1, 2라운드에서는 잘 쳐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지만, 마지막 날 인코스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리며 2오버파를 쳤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을 넘지 못한 탓이라 생각한다. 아쉬움은 남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다시 우승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얻은 대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함께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거의 대부분이 후배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후배들과의 라운드는 어떤 느낌인가. 최근에는 선수층도 두터워지고 전체적인 실력들도 상향평준화되어 가는 것 같다. 잘 하는 후배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투어 전체를 볼 때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지난 11월 에덴밸리 매치플레이 4강전에서도 후배 강경남과 맞대결을 펼쳤다. 파4의 14번홀을 3번 우드로 공략했는데 이게 해저드에 빠지고 말았다. 후반 추격의 기회일 수 있었지만 아쉽게 보기에 그쳤다. 후배와의 대결에서 뒤져 있던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닌가? 후배와의 대결 때문은 아니지만 부담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8강까지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4강에서도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전반에 3홀을 뒤진 상황이라 후반에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샷이 너무 잘 맞았고 바람도 타지 않아 해저드로 빠지고 말았다. 공격적인 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에 더 실망하게 됐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아시안투어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바 있고, 유럽무대도 경험한 바 있다. 미국 진출은 실패했지만 EPGA나 일본 JGTO 같은 다른 해외무대의 문을 두드려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미국 진출 이후에는 오랫동안 골프에 염증을 느껴 다시 해외 진출을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 미국 진출 이후 몸에 이상을 느꼈던 탓이 크다. 음식이 맞지 않아 고생을 했는데 몸을 추스르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었다. 미국에서 건강에 이상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몸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환경과 음식이 맞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욕심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실패 이후에 해외 진출에 더 신중하게 됐다.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는 목표가 일본무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는 요즘 다시 해외진출에 대한 욕심이 생길 것도 같은데? 해외무대로 진출하는 것은 이제 후배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는 능력 있는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교습가들에게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의 티칭 노하우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고 그것을 한국의 많은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최근 투어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고, 최경주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많은 젊은 골퍼들이 세계무대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 PGA투어에 도전했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한국에서 정상에 섰던 선수들이 해외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새로운 무대를 향한 도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본인의 실력에 확신이 있다면 밑바닥부터 다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관건이 된다. 만약에 어린 선수들이라면 처음부터 미국에서 투어를 시작하는 것도 이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 최경주 선수의 예에서 알 수 있듯 한국 골프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더 다진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KPGA 투어에서 톱클래스의 실력은 세계적으로 통할 만한 수준이라 생각하나? 물론이다. 아직까지 많은 한국 선수들이 KPGA는 작은 투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 PGA에 비해 상금 규모나 대회 수에서 KPGA가 밀리는 부분은 있지만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제는 심리적인 부분이다. PGA를 준비하는 유망주들에게 ‘작은 투어에서의 성공으로는 어렵지 않을까’하고 망설이는 것이 해외 무대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안은 KPGA 투어가 월드투어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성공한 선수들이 Q스쿨 없이 PGA 무대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럽 선수들은 자국 투어에서 성공하면 월드 랭킹에 의해 미국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에게는 아직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투어가 하루 빨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실력 있는 후배들을 위해 필요하다. PGA 무대에 도전하면서 데이브 펠즈나 데이비드 레드베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치들에게 레슨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의 교습이 실제 경기력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나? 미국의 티칭 스타일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에 의한 훈련을 중시한다. 하나의 동작을 익히는 데도 교보재를 활용하거나 다양한 훈련방식을 도입해 끊임없이 흥미를 유발시킨다. 이런 방식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한국의 대부분 교습가들이 행하는 훈련방식과는 많은 부분 다르다. 감각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한국의 훈련방식은 인내를 가지고 동작을 반복하면서 익힌 감각을 통해 실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훈련방식은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스트레스가 많아지면 롱런이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안산에 강욱순 골프아카데미를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아카데미 사업은 안산시와 함께 진행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사실 나 역시도 이번 아카데미 사업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수도권의 노른자위 같은 땅에 개인으로서는 절대 마련할 수 없는 넓은 부지, 그리고 훌륭한 인프라가 더해져 아카데미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추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막 공사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완공은 2010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아카데미가 문을 연다면 관심을 갖는 선수들이 많을 것 같다. 투어를 통해 갈고 닦은 실력과 미국에서 얻은 노하우를 유망주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말했듯이 나는 미국에서 유명 교습가들의 교습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 경험의 바탕에다 미국에서 끊임없이 개발되는 효율적인 교습도구들을 최우선적으로 도입할 것이며, 세계적인 교습가들의 노하우를 반영해 세계 최고 수준의 아카데미로 키워나갈 목표를 갖고 있다.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성공과 시련, 그리고 재기라는 큰 굴곡을 겪은 만큼 감회도 남다를 것 같다. 본인의 골프 인생을 정리한다면? 벌써 20년이 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 동안을 돌아보면 지난 20년은 골프를 참 사랑했던 세월이었던 것 같다. 골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세계를 돌아다니며 투어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처음 그때와 마찬가지로 골프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 그동안 골프와 함께 살아온 것은 축복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골프와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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