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은닉해 놓았던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돈세탁한 혐의를 포착, 전면 수사에 착수한 사실이 26일 밝혀졌다. 그동안 전씨의 비자금 은닉에 대해서는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으나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이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대검 중수부(안대희ㆍ安大熙 검사장)는 전씨 측이 서울 명동과 강남 등지의 사채시장을 통해 1,000억원이 훨씬 넘는 비자금을 세탁한 정황을 포착하고 돈세탁에 관여한 사채업자들을 최근 잇따라 소환해 조사중이다.
전씨측은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1~4월 사채업자 30여명을 동원, 현금으로 채권을 매입하거나 보유 채권을 내다파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세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세탁은 시중은행 간부 출신인 김모씨 주도로 이뤄졌으며, 증권금융채권 등 5년 만기 무기명 채권(속칭 `묻지마` 채권)을 집중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채권 매매에 필요한 가ㆍ차명 계좌 명의를 빌려준 사채업계 종사자들로부터 당시 세탁된 자금이 전씨의 비자금이라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세탁된 자금이 최종적으로 전씨 측에 흘러가 사용된 정황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체 비자금 규모 및 잔여 비자금의 소재를 집중 추적중이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전씨 측이 매입한 5년 만기 채권 중 상당수가 만기가 지났는데도 시중에 나오지 않아 자금의 전체적인 흐름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전씨 측이 당국의 조사를 우려해 보유 채권 상당수를 폐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수사중이다.
1997년 법원으로부터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전씨는 지금까지 314억원만 납부, 이달 초 검찰은 추징금 환수를 위해 감정가 1,790만원 상당의 전씨 동산 일체를 경매에 부친 바 있다.
앞서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열린 재산명시 심리에서 전씨는 부인ㆍ자녀 등 일가족 9명의 전 재산을 50억원 미만으로 신고했고 자신의 예금은 29만원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제출한 재산목록의 진위 여부에 대해선 현재 서울지검에서 실사가 진행중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전씨의 비자금이 드러날 경우 비자금 추징은 물론 허위 재산목록 작성 혐의로 전씨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태규기자, 노원명기자, 김지성기자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