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국가들에 원유를 둘러싼 민족주의 기운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는 이달 중 배럴당 120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미국과 영국ㆍ일본 등 선진국들이 유가 안정을 위해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해왔지만 중동국가들이 노골적으로 증산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현재의 글로벌 수요대로 증산에 나선다면 조만간 중동지역에 원유가 고갈돼 후손들이 사막의 가난한 베두인으로 남겨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 깔려 있다. 그동안 유가 하락론을 제기한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하면 글로벌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최근의 유가 상승세는 이런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중국ㆍ인도 등 신흥개발국들의 원유 소비는 급증하고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수급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배럴당 90달러를 밑돌던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배럴당 117달러를 넘어섰고 이런 속도가 더 진행될 경우 이달 중 12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부니 피킨스 헤지펀드 BP캐피털 매니저는 “단기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며 유가 초강세를 전망했다. 시장 분석가들은 산유국들이 원유 증산에 미온적인데다 자원민족주의화 경향도 강화되면서 공급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국제유가의 상승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특히 국제 원유 공급의 40%를 담당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증산에 나설 뜻이 없음을 밝힌 점이 부담이다. 실제로 OPEC은 산유량을 줄이지 않겠다는 그간의 공언과는 달리 올 들어 원유생산량을 줄여왔다. OPEC의 하루 평균 원유생산량은 지난 1월 2,780만배럴, 2월 2,760만배럴, 3월 2,730만배럴 등으로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수요 감소 전망도 빗나가고 있다. 2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ㆍ인도ㆍ러시아ㆍ중동 등 신흥경제국의 올해 원유 소비량은 전년 대비 4.4% 증가한 하루 평균 2,067만배럴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미국(2,038만배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다 중국 등 글로벌 증시 불안으로 유동성이 상품시장에 몰리는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유가 급등에는 국제적인 석유 고갈에 대한 우려도 자리잡고 있다. 세계 2위 산유국인 러시아의 원유 생산은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유가 급등은 석유 생산이 이미 정점에 진입했거나 임박했다는 염려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압둘라 알 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지난 20일 “유가가 소비나 공급과 별 관련이 없다는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며 “유가는 더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