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 청과물 도매업을 운영하는 어떤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태풍이 오지 않아 과수 농가에 풍년이 들었으니 좋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분의 대답은 의외였다. 태풍은 매년 적당히 와줘야 한단다. 바람이 적당히 과실들을 솎아줘야 더 튼실하고 상품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과수 농가의 입장은 그렇지 않겠지만 꽤 일리 있게 들리는 얘기였다. 생각해보면 태풍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조를 없애주고 먼지 등으로 오염된 대기를 일시에 청소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입자 너무 작아 혈액까지 침투
지난 9월 서울시는 올해 상반기 미세먼지 농도가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서울시의 노력보다도 자주 내린 비의 덕을 본 게 아니냐는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대기질 개선을 위해 적지 않은 공을 들인 정부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억울한 점이 없지 않지만 대기의 청정도(淸淨度)는 비나 바람과 같은 기상 변화에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입자 형태로 돼 있는 미세먼지는 다른 오염물질에 비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는 미세먼지를 포함해 아황산가스ㆍ오존 등 7개 주요 대기오염물질에 대해 대기환경기준을 정해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세먼지는 대기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물질로 많은 예산을 들여 중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미세먼지는 다른 오염물질과는 달리 건강에 안심할 수 있는 기준치가 정해져 있지 않은데 이는 흡입한 만큼 인체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1995년부터 입자의 크기가 10㎛ 이하의 미세먼지인 PM10을 대기환경기준 항목에 포함시켜 관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오염농도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어 정부 정책의 추진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PM10보다 우리의 건강을 훨씬 더 위협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PM2.5라는 초미세먼지다. 크기가 2.5㎛ 이하 먼지입자를 지칭하는 초미세먼지는 입자가 너무 작아서 코나 기관지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 속까지 들어가서 폐의 기능을 약하게 만들거나 일부는 혈액으로 침투해 질병을 유발시키고 관련 질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많은 국내외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학계 등에서는 간간이 초미세먼지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PM10 관리도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논한다는 게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초미세먼지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더 이상 관리를 지체한다면 앞으로 우리 주변의 맑은 공기는 물론이고 건강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제는 대기환경기준에 초미세먼지 기준을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환경기준으로 정한다는 것은 정부가 정책의지를 가지고 초미세먼지를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환경성 질환 예방 정책 시급
미세먼지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야외 활동을 생업으로 가지고 있는 서민들임을 감안하면 초미세먼지에 대한 관리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자동차와 같이 이미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미세먼지의 배출원인 외에도 야외 소각장이나 숯가마 찜질방과 같이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배출원인의 관리도 좀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환경정책은 환경성 질환을 예방하는 건강관리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환경정책을 선진화하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환경정책의 대부분은 '하지 말라'는 것이 많지만 그만큼 건강을 보호하는 울타리는 높아진다. 그 울타리 내에서 숨 쉬는 우리는 다함께 깨끗한 혜택을 누릴 것이다. 서울 남산에서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청명한 하늘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