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만6,205달러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하며 꿈의 '3만달러'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를 찍으며 2%대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접한 시장은 별 반응이 없었다. 실제 한국경제가 나아진 게 아니라 통계에 따른 '착시효과'이기 때문이다.
실제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한 데는 원화 강세 영향이 컸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2.8% 절상됐다. 원화 기준 1인당 GNI증가율은 3.1%로 달러 기준(6.1%)의 절반에 불과했다.
통계개편이라는 변수도 작용했다. 연구개발(R&D), 무기 등을 비용 아닌 자산으로 처리하도록 기준이 바뀌면서 GDP 규모가 불어났다. 국가 전체의 소득이 늘어났는지 몰라도 개개인의 주머니 사정은 변화가 없으니 통계와 체감경기 간 괴리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R&D 모범국 한국, GDP 상승효과는 뚜렷=한국은행이 이번에 국민계정을 개편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새 국제기준인 '2008 국민계정체계(SNA)'를 적용했다. 그리고 기준년을 2005년에서 2010년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그 결과 2010년 신계열 명목GDP 규모는 1,265조3,000억원으로 구계열(1,173조3,000억원)에 비해 92조원(7.8%)이나 커졌다.
새 국제기준인 '2008 SNA'에 따르면 R&D와 K팝 등 음악·드라마·영화·문학 같은 예술품 원본 등 지식재산생산물이 무형고정투자에 편입된다. 또 정부의 소비지출로 보던 전투기·군함·탱크 등 무기시스템도 자산으로 처리된다.
국가 간 거래의 발생 시점은 '국경통과'에서 '소유권이전'으로 변경된다. 즉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기업이 해외에 법인을 세워도 소유권을 유지하고 있다면 국내 GDP에 잡힌다.
'2008 SNA'적용은 명목GDP 증가분(7.8%)에서 5.1%포인트의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R&D는 3.6%포인트나 됐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GDP 대비 R&D 지출액 비중이 이스라엘·핀란드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라며 "우리에 앞서 통계를 개편한 미국(2.5%포인트), 호주(1.4%포인트), 캐나다(1.2%포인트) 등을 크게 웃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반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와의 괴리는 더 벌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신계열 경제성장률은 2005년을 제외한 대부분 연도(2000~2013년)에서 상향으로 수정됐는데 이는 R&D성장률이 GDP성장률보다 높았기 때문"이라며 "GDP성장률과 체감경기의 괴리는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소비·투자 부진…가계소득 비중 OECD평균 이하=통계개편에 다소 가려졌지만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2013년 국민계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비투자는 뒷걸음쳤고 민간소비는 부진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0년 22%, 2011년 4.7%, 2012년 0.1% 등으로 둔화되다 지난해에는 아예 -1.5%로 돌아섰다. 반도체 제조용기계, 컴퓨터 및 주변기기 등을 중심으로 기계류 투자가 3.5%나 줄었다. 국내총투자율은 전년보다 2.0%포인트 하락한 28.8%를 기록했다.
민간소비도 여전히 게걸음을 보였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전년 대비 2.0% 증가했지만 정부소비 증가율(2.7%)을 밑돌았다.
저축률이 소폭 올랐지만 가계가 소비를 줄인 탓이 컸다. 개인 순저축률은 4.5%로 전년보다 1.1%포인트 늘었다. 반면 정부 부문은 6.8%로 0.8%포인트 줄었다.
1인당 국민소득보다 '국민 주머니 사정'을 잘 반영하는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는 전년 대비 1,020달러 늘어난 1만4,69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07~2013년 중 국민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56.4%로 나타났다. 이는 2008~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60.3%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편 한은은 이번 통계개편 결과 후속으로 다음주 중 공공부문의 총수입·총지출·수지 등을 담은 신규지표를 발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중앙정부·지방정부는 물론 사회보장기금·공공비영리단체·공기업이 포괄된다. 5월 중에는 '국민대차대조표'를 처음 발표하기로 했다. 정영택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기업·정부·가계의 실물자산, 금융자산, 금융부채 등을 일반 기업 대차대조표 같은 모습으로 발표할 계획"이라며 "지금까지는 각 연구기관이 나름대로 잠재성장률을 추정해왔지만 앞으로는 공식통계(국민대차대조표)를 기반으로 한 잠재성장률을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ed.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