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선진 한국의 조건

윤우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80년대 초반, 한국 경제는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고물가와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고(故) 김재익 경제수석은 당시 자율·안정·개방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기업이 성장을 좌지우지하고 국산품 애용이 일반화된 시대에 차별적 금융·세제나 수입규제의 대대적 철폐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경제개혁가의 외로운 싸움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독재권력의 막강한 지원에 힘입어 성공을 거뒀다. 그 이후 한국 경제는 저물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득만으로는 국민행복 달성 어려워

김 수석이 자율적 개방경제를 꿈꿨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도 사회통합형 성장을 그리지 않을까 싶다. 높은 국민소득 수준과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안정은 선진 한국의 기본 조건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가 1인당 소득과 비례한다는 사실은 경제학의 기본 명제다. 평균 국민소득과 국민행복지수와의 상관관계는 여러 국제적인 조사에서도 밝혀진 만큼 소득 4만불 시대는 반드시 열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반드시 모든 국민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라는 리처드 이스터린(Easterlin)의 가설에도 많은 학자들은 동의한다. 보통 사람들은 절대소득과 함께 다른 사람과 비교한 상대소득에도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보다는 손해에 대해 더 민감하다.


선진 한국이 경제는 물론 정치·외교·사회·문화 분야에서도 앞서나가야 한다면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수출 대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한류가 아시아지역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것으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사회통합형 경제는 소수의 플레이어들이 독점하는 승자독식형 시장과는 함께 갈 수가 없다. 진정한 선진국들은 사회통합형 경제로 나아가면서 일반대중들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어렵고 험한 길을 걸어왔다. 창조적 선진화는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치·경제와 사회가 세 축으로 맞물려 상생적인 발전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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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선진국으로 다가갈수록 잠재성장률을 유지하기가 한층 어려워진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 잘못된 정책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통해 잠시 성장률을 올릴 수 있으나 그 후유증으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진다면 수십년간 피해를 입게 된다. 현 상태에서 잠재성장률을 4%로 유지하려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개혁이 필수적이다.

정치·사회 아우르는 통합형 성장 필요

복지제도의 개혁은 선진한국을 이끌어갈 또 다른 축이다. 생산적 복지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해도 복지제도를 생산적으로 만드는 개혁을 하라면 아무리 유능한 전문관료라도 혀를 내두른다.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라는 말은 쉬워도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는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다. 유능한 전문가와 창의적인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많은 정책실험을 거쳐야만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수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김재익과 이건희의 개혁방식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두 개혁의 공통점은 굳은 신념 아래 확고한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선진 한국을 향한 정책은 역대 정부에서 지나칠 정도로 다뤄져왔다. 빼곡한 수치와 백화점식 정책의 나열보다는 국민들에게 정부의 철학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각 부처는 3년 동안 가장 어렵지만 중요한 과제 하나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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