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4일] 로베르트 코흐

1884년 3월24일 베를린에서 열린 병리학 학술대회. 장내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백색의 흑사병’으로 병사자의 15%를 차지하던 결핵의 원인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 결핵은 만성 영양실조가 아니라 세균 때문에 발생한다는 연구는 의학의 흐름을 바꿨다. ‘결핵의 날’도 여기서 비롯됐다. 1843년 독일 클라우슈탈에서 광산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괴팅겐대 의대를 졸업한 코흐는 30세까지 평범한 개업의로 지냈다. 세균학자로의 변신 동기는 아내가 준 생일선물인 현미경. 진료보다는 실험에 빠진 코흐는 수백번의 실험 끝에 1876년 탄저병의 원인을 밝혀냈다. 공로를 인정한 독일 정부는 시골 의사인 그를 1880년 베를린보건연구소장에 임명했다. 파격인사는 결핵균 발견으로 이어졌다. 전원생활을 꿈꾼 아내에게 이혼당하는 와중이었다. 콜레라균의 원인과 전염경로 규명, 세균배양기ㆍ염색법ㆍ현미경사진촬영법도 그의 업적이다. 1905년 노벨의학상 수상. 코흐의 ‘세균병인론’에 자극받아 개발된 각종 예방ㆍ치료법은 인간의 수명을 늘렸다. 뉴턴을 제치고 전세계 우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과학자가 된 것도 이런 공로 덕분이다. 코흐는 베링ㆍ에를리히ㆍ피비거 등 노벨상 수상자 3명을 비롯, 수많은 제자도 길러냈다. 1887년 그가 개설한 베를린대학 세균학과 졸업생 대다수가 독가스를 만들었다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지만. 세상은 제2, 제3의 코흐를 고대하고 있다. 에이즈에서 조류독감에 이르기까지 신종 전염병 탓이다. 실험을 거듭할수록 세균의 저항력이 세진다는 코흐의 발견처럼 오늘날 병균의 내성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병균과의 싸움은 인간의 숙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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