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창조경제의 심장, 스토리를 키워라] <하> 산업 생태계 구축

공정 거래·창작자 권리 지켜줄 '게임의 룰' 만들어야

스토리포맷 등 법제화 통해 산업 선순환 토대 구축 필요

북촌 등 흥미로운 사연 담긴 지역 고유 스토리 발굴해야

자동차 등 다른 산업과 연계… 콘텐츠 활용 폭 확대도 시급

지난달 22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로 서울 COEX에서 '이야기산업 활성화를 위한 스토리마켓' 행사가 열려 스토리 창작자와 투자자, 콘텐츠 업계의 호응을 받았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을 통한 거래 활성화가 우리 콘텐츠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인들에게 자동차 보유가 꿈이라면 한국 등 동양인들은 자신의 집(빌딩)을 갖는 것이 꿈이다. 동양인의 정서에 맞춘 건축물판 트랜스포머가 준비되고 있다.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것이 영화 '트랜스포머'라면 새로운 작품 '빌딩자이언트'는 빌딩이 로봇으로 변신해 악의 세력과 대결한다. 지난달 22일 서울 삼성동 COEX에서 열린 '이야기산업 활성화를 위한 스토리마켓'에서 정성종 작가는 자신이 구상한 애니메이션 '빌딩자이언트'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작품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2012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우수작이다. 현재 아이코닉스 프로듀서인 정 작가는 " '빌딩자이언트' 이야기는 시나리오 초고 수준으로 한중 합작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개발하기 위한 글로벌 원작 스토리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젝트피칭에 나선 작가는 모두 25명으로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와 투자자, 기관ㆍ기업인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정 작가는 "이야기 시장에서 그나마 영화나 드라마는 체계화돼 있다고 하겠지만 애니메이션ㆍ출판 분야는 시작단계"라며 "이런 행사를 늘리는 등 지원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스토리'의 정의는…게임의 룰 만들어야=이야기(스토리) 산업 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문제는 정확히 어떤 것을 이야기로 볼 것인가다. '이야기'는 사전적 정의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서사적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출판·공연·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화를 염두에 둔 이야기를 말하게 된다.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이야기의 '소재'로서 아이디어ㆍ모티브ㆍ인물 등 △시나리오ㆍ대본ㆍ소설 등 좁은 의미의 이야기 △좁은 의미의 이야기 전단계로서의 기본적 줄거리를 가진 '원천 스토리'가 있다. 현재 어느 정도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저작권법과 공정거래법의 관리 대상이 되는 것은 시나리오 같은 좁은 의미의 이야기다. 원천 스토리 이하는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업계가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원천 스토리로서의 이야기다. 원천 스토리가 있어야 시나리오나 대본ㆍ소설이 나올 수 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원천 스토리 창작이라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특정 장르의 적용이 불확실한 시나리오·대본 제작에 올인하는 위험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창작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와 함께 수요자이자 최종 콘텐츠생산자인 기업도 원천 스토리 하나로 영화·드라마·출판·공연·게임 등 다양한 활성화가 가능하다.


원천 스토리의 창작과 거래를 활성화해 전체 이야기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주장이 나온 이유다. 이를 위해 '이야기산업 진흥법(가칭)' 등 이야기산업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포맷을 규격화해 거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저작권 인정 등 창작자의 권리관계도 분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게임의 룰'이 정해지는 셈인데 이야기산업의 선순환 생태계가 본궤도에 오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정부는 이야기산업 진흥법의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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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관은 "원천 스토리를 거래 대상으로 삼고 법률로 보호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문화산업에서도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도전적인 시도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스토리 발굴해야=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어디서 발굴해야 하는지 실천적으로 들어갈 때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에 고유한 이야기 발굴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산업도 서울에 집중되면서 거대담론적 이야깃거리는 이미 많이 나온 상태다. 하지만 지역밀착적 이야기들은 여전히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도 북촌이나 가로수길의 이야기, 유적·유물에 얽힌 이야기들은 여전히 많다.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지역스토리랩'을 통해 지역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야기 창작 채널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며 공급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웹툰과 웹소설도 주목된다. 특히 웹툰은 한국에서 가장 발달된 형식이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쉽고 빨리 대중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성공한 웹툰의 경우 다른 콘텐츠 분야에서의 활용도도 높아지고 있다. 강풀의 '순정만화'를 시작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더 파이브' 등 웹툰의 영화화가 이어지고 있다. 소재고갈에 시달리는 영화사들이 특히 웹툰에 주목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는 계열로 웹툰을 콘텐츠 제작사에 공급하는 회사 '더하기'를 운영하고 있다. '미스터 고'를 만든 덱스터스튜디오는 영화제작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웹툰 사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김용화 덱스터 대표는 "마블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스토리에 강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라며 "우리 영화에 스토리를 공급하기 위해 웹툰 부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대상 활용도 넒혀야=이야기가 문화 콘텐츠 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제조·서비스 업체들도 단순한 이미지 주입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만드는 광고를 시작했다. 기아자동차가 트랜스포머 방식의 애니메이션 '또봇'으로 대박을 쳤고 현대자동차가 '카봇'이라는 캐릭터를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에 나왔던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한 사례다.

정부는 기업이 회사 내 '이야기전담부서'를 두고 활용할 경우 이를 연구개발(R&D) 업무와 같다고 보고 세제혜택 같은 지원책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는 "디자인도 그 자체로는 모호한 개념일 수 있지만 제조ㆍ서비스업과 만나 디자인 산업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야기산업의 능력과 영향력은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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