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여론 존중과 영합/유혁인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로터리)

백인소지면 필유곡절이요, 천인소지면 무병이사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백사람이 손가락질하면 반드시 곡절이 있고, 천사람이 손가락질하면 병이 없어도 죽게 된다는 것이다. 여론의 올바른 수렴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묘하게 보여주는 문구라고 생각한다.앞부분은 여러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아랑곳 없이 자기 혼자만 문제가 없다고 하는 독불장군식 태도는 옳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나라에 비유하자면 지도자는 늘 민의와 민심에 귀기울이고 여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음미케하는 대목이다. 뒷부분은 죽을 죄를 짓지 않았는 데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몰아가면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오도된 여론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일깨워 준다. 속된말로 열사람이 사람하나 바보만들기 쉽다는 것이다. 여론재판 혹은 서양에서 말하는 들쥐(Lemmings)라는 표현도 모두 다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당한 절차나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잘못된 여론으로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결국 앞뒤 구절을 통틀어 보면 여론을 존중해라. 그렇지만 오도된 여론은 멀쩡한 사람도 생매장 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올바른 여론수렴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여론수렴의 방법으로서 여론을 존중한다는 것과 여론에 영합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여론에 영합하기는 쉬워도 잘못된 여론을 지적하기란 대단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만에 하나, 나라의 지도자마저 이러한 잘못된 여론에 영합한다면 그 문제의 심각성은 엄청날 것이다. 물론 여론은 경청해야만 한다. 하지만 여론이 잘못된 판단이나 풍문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를 제대로 지적하고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것도 지도층의 덕목이다. 잘못된 여론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눈치나 보고 이에 영합하여 추종한다면 나라는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결국 맹목적 여론정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여론을 무작정 추종하는 것은 여론에 야합하는 것이지 결코 진정으로 여론을 존중하는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올바른 여론수렴만이 민주적 리더십 발휘와 참된 여론정치를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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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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