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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에서 지면 청와대나 정부가 책임질 거냐." 21일 당정이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에 대해 혜택축소를 완화하는 카드를 이번부터 소급적용하기로 한 과정은 총선 패배를 우려하는 여당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법적·행정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다자녀와 독신 가구를 비롯한 많은 중산층이 피해를 입는다는 반발이 커지면서 여당이 전격적으로 소급적용 카드를 밀어붙인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이 "홍보부족으로 보완책은 내년 초 연말정산분부터 실시"라는 입장이던 박근혜 대통령,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다른 입장을 관철시켜 앞으로 민심을 자극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당이 주도권을 쥐고 우위에서 조율할 것임을 예고했다. "복잡한 세법개정 내용을 국민에게 잘 이해시켜야 한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에 보조를 맞추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던 여당이 극약처방으로 돌아선 것은 20일 원내대책회의 비공개 때 많은 의원들이 아우성을 쳤기 때문이다. "담뱃세 인상에 이어 공무원연금 개혁도 상반기에 추진하는데 연말정산 폭탄까지 터지면 선거를 어떻게 치를 거냐"는 거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비슷한 시각, 최 경제부총리가 발표한 보완책을 이번 연말정산부터 소급적용해야 한다고 대부분 지도부를 압박했다"고 전했다.
이에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의장 등은 기재부 조세정책관을 긴급히 비공개로 불러 소급적용 검토를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경제부총리는 물론 정부의 보고를 받은 청와대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직전에 "이해가 잘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종범 경제수석도 긴급 브리핑에서 "많이 떼고 많이 받느냐, 조금 떼고 조금 받느냐의 문제"라며 현격한 시각차를 나타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21일 아침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소급적용 요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거듭 작심한 듯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 대표는 "정부는 근로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여야 공정한 세정이라고 말하면서 저소득층의 부담은 줄이고 고소득층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의 불만을 초래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의 심복인 이정현 최고위원이 "이번 연말정산 논란은 증세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자 김 대표는 즉각 "결과적으로 9,300억원의 세금이 더 들어오게 설계돼 있어 국민은 증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반박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만류에도 이날 오후 긴급 당정회의를 소집해 최 경제부총리부터 소급적용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끌어냈다. 최 경제부총리도 당정갈등 우려를 의식한 듯 당정회의 모두발언에서 당의 의견을 수용할 뜻임을 내비쳤다. 당정갈등이 확산될수록 국정동력만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정부와 당의 요구를 사전에 조율해 이례적으로 신속히 그 요구를 들어줬다"며 안도감을 표시했다.
물론 이날 당정이 다자녀와 독신 가구 등의 급격한 혜택축소와 관련한 대책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소급적용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 줄다리기가 남아 있지만 일단 여당이 연말정산 이슈를 주도하는 형국이 됐다. 특히 20대 총선이 다가올수록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당이 민심과 이반된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혀 앞으로 청와대와 정부도 당과의 소통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여당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민심에 반하는 정책은 당에서 '다시 만들어내라'고 하면 이제는 정부에서 안 만들 수 없을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여당은 연내 군인·사학연금 개혁 로드맵을 공개했던 정부에 대해 최근 "여당이 정부 뒤치다꺼리하다가 골병이 들 지경"이라며 청와대와 정부에 해명 브리핑을 요구해 관철시킨 바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이 집권 이후 사상 최저로 떨어지고 당청 간 지지율이 역전돼 앞으로 당의 목소리가 커지게 돼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한편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정부가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것을 탓할 수는 있어도 여당에서도 이렇게 다 추진해놓고서 여론이 안 좋다고 바로 뒤집어 소급적용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