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심층진단] 은행 해외지점 잇단 스캔들… 왜?

직원 이력까지 따져 지점 내주는데 관리·운영은 여전히 구멍가게 수준

승인없이 인사 교체하다 점포 개설 불이익 받아

"내버려두면 관리 안돼" 본사가 직접 경영하기도


우리나라 은행의 해외 진출 역사는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해외 당국의 규제내용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왜 우물안 개구리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더욱 문제는 한때 개방화 물결이 일었던 동남아나 중국 등도 최근에는 은행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해외은행을 향한 규제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의 대형은행에 비해 소규모로 전문성 없이 대처해온 국내 은행에는 더욱 어려운 환경이다.

◇국내에선 사소한 실수도 현지에서 악재로= 현지 당국의 규제가 높은 곳 중 하나는 최근 우리나라 은행들이 앞다퉈 진출하는 중국이다. 중국은 현재 190여 개국이 진출하고 있으며 해외 진출 점포에서 일하는 인력만 4만 5,000명이다. 한때 개방 문호를 넓히던 중국의 은행감독국은 최근 국가별 점포에 대한 쿼터제(quotaㆍ진출한도제)를 강화하고 있다. 일단 중국은 우리 금융회사가 현지 점포를 개설하는 데만 평균 1~2년 가량이 걸린다. 우리 금융감독원에 해외 금융회사가 점포 개설을 신청하면 90일 이내 결론을 내리게 한 것과는 천양지차다. 현지 진출한 은행 관계자는“중국은 점포 개설을 승인하고도 실제로 개설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건물 임대와 직원 채용은 물론, 경영계획이나 소비자보호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후에야 개설을 허락해준다”고 전했다. 중국은 특히 법조문보다 당국의 재량권이 강하기 때문에 현지에 근무하지 않고는 감독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 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당국의 승인 없이 인사를 교체했다가 점포 개설에 불이익을 받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중국은 우리 은행들의 현지 직원 임기인 3년도 짧다고 생각한다”면서 “임기를 채워서 바꾸더라도 현지 당국에 직접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당국은 인사 외에 경영에도 간여한다. 중국에 진출한 은행은 고객에게 받은 예금의 75%만 대출해야 한다. 나머지 25%는 저 수익이 나는 쪽에 굴릴 수 밖에 없는 셈이다.

금융업 선진국인 홍콩이나 독일 등도 규제가 강하기는 마찬가지다. 홍콩은 점포 개설 시 일반 직원까지 제재경력을 조회한다. 홍콩에서 우리나라 금감원 여러 부서에 공문을 보내 직원 한 사람의 제재사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독일 역시 임원에 대해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한다. 독일은 법인에 대해 독일인과 한국인 2명의 법인장을 두도록 하며, 한국인의 경우 사업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독일어를 구사하도록 요구한다.


비교적 진출이 쉬웠던 인도네시아 등 신흥 개발국도 최근에는 해외 은행에 대한 경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당국은 싱가포르가 은행을 철수하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점포 개설에 엄격해졌다. 한국의 은행 현지 점포의 지점장을 인도네시아가 거부하는 속내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되었다는 게 금융계의 해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인도네시아 당국에 해당 지점장의 과거 제재사실을 보내면서 전체 제재양정을 설명하며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밝혔는데도 승인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당국이 경험이 적어 생긴 실수일 수도 있지만 규제 강화 분위기도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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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수준의 주먹구구 운영= 최근 문제가 된 국민은행 베이징 법인장 교체 등은 중국의 ‘임직승인(任織承認)’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 크다. 국민은행이 베이징 법인장 등을 교체하기 전 금감원은 국민은행을 포함한 각 금융회사에 되도록 임기는 유지하라는 취지로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국민은행의 베이징 법인장 교체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건호 행장도 최근 조영제 금감원 부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공문을 보고 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다른 시중 은행의 관계자는“당시 금감원이 보낸 공문은 실무진이 인사에 반영하고 인사를 행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설명했다”면서”금감원의 공문을 일일이 행장에 보고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설명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 진출에서 은행보다 실적이 높은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현지 법인을 사실상 직접 경영하고있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국내의 조직은 현지의 인사ㆍ자금조달ㆍ리스크ㆍ기업문화등 모든 경영에 대한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돌아가고 있다”면서“현지 법인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내버려 두면 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후 정치색이 강한 은행 역시 해외 점포에 대해 주먹구구식 운영을 하는 경향이 짙다. 은행 고위 임원은 “해외 점포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 인맥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해외지점은 지주회장이나 은행장 측근이 보은받아 가는 자리로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지에서 연이어 어려움을 겪다 보니 일부 은행은 대통령이 해외 순방 시‘말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국책은행이나 정치권을 통해 대통령의 발언원고에 해외 점포 개설 민원을 첨가하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HSBC등 해외 은행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본부를 두고 현지에 밝은 전문가를 육성한다”면서“우리나라 은행은 한국인 2~3명에 현지 창구 직원 열 댓명 정도가 있으면서 한국인 유학생이나 국내 기업을 상대로 운영하는 점방 수준이니 현지 당국에서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지 진출에 참여했던 한 은행 관계자는“시티은행이 100년 전 인도에 진출했을 때 90년 동안 적자였지만 이후 10년은 그간의 적자를 만회할 만큼의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면서“그동안 국내은행은 수익에서 해외점포가 차지 하는 비중이 적다는 이유로 소홀히 대했지만 앞으로도 그런 식이라면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세원 기자 w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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