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돈 굴릴 길 막히자… 무리수 두는 저축은행

일부사, 90%까지 사업자주택대출·신용으로 1억 제공

5%대 파격 금리도… "위험관리 소홀로 부실 노출 우려"

남는 돈 해소하려 과잉 영업… 경기 더 나빠지면 건전성 적신호


서울의 한 저축은행에서 시세의 90%까지 대출해 준다는 광고문구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고객 잡고보자" 신규 저축銀 과잉마케팅 도마에

금융당국 정밀 감시·감독… 위험 미리 차단해야



# A저축은행은 최근 사업자 주택담보대출로 담보물인 아파트 가격(3억5,000만원)의 90%에 이르는 3억1,000만원을 승인했다. 개인 주택담보대출이라면 담보가의 70%까지만 대출해줄 수 있지만 '사업자'가 붙으면 한도제한이 없다. 한 관계자는 "안정성을 생각하면 담보비율을 80% 이상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금리가 낮은 은행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몰리는 상황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한도를 늘려주는 것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B저축은행은 다른 곳들이 2%대로 수신금리를 낮추는 상황에서 5%대의 파격적인 금리를 제시했다. 비슷한 시기에 새로 진입한 다른 저축은행과 지방의 다른 저축은행은 4%대의 높은 적금상품을 내놓았다. 수신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고객들의 눈길이 모였고 수십억원을 끌어들였다. 이들 상품은 만기 때 이 금융사들의 목줄을 죌 수밖에 없다.

저금리 시대에 돈 굴릴 길이 막힌 저축은행들이 또다시 위험한 불길에 손을 대고 있다. 1금융권보다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저축은행 예적금으로 돈은 몰리는데 막상 운용할 곳이 없어 담보비율 제한이 없는 사업자 주택담보대출로 90%에 육박하는 금액을 대출해주거나 사업자가 아닌 개인에게 사업자 담보대출을 주는가 하면 신용대출 한도를 1억원까지 제공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흡사 지난 2011년 대형 저축은행들의 영업정지 사태 직전 높은 금리로 수신액을 올려 신용대출과 부동산 개발에 남발한 뒤 부실이 생기면 다시 높은 금리의 특판으로 자금을 수혈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 중형 저축은행 대표는 "이른바 '관계형 금융'을 통해 간신히 정도영업으로 나가는 시점에서 왜곡된 영업이 고개를 들고 있어 안타깝다"며 "과거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국 차원에서 정밀 감시·감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정부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상향조정으로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던 기업들이 시중은행으로 옮겨가면서 저축은행들이 공백을 메우려 사업자 담보대출 확장에 다시 손을 뻗고 있다.


일부에서는 주택 가격의 100%를 대출해주는가 하면 심지어 필요한 만큼 한도가 나오지 않는 개인을 사업자로 위장해 높은 한도로 대출해주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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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편법적 대출은 부동산 경기가 호황인 한은 별문제가 없지만 경기변동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업계에서는 통상 경락률을 80%로 보는데 경기변동으로 차주가 폐업하면 80% 이상을 대출해준 저축은행은 담보물을 처분하더라도 80% 밖에 못 건진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돌려받을 수 있는 담보가치는 더욱 감소한다. 대출금의 10~15%가량을 그대로 손해 보게 되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하나 시중은행은 이를 장기적인 방향성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일례로 시중은행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라든지 건설업종 대출 취급을 늘려야겠다는 목표 자체를 설정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장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향후 부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는 얘기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자금력과 주택담보대출 노하우가 있는 곳은 물론 최근 수년 사이 새로 업계에 진입한 일부 저축은행에서 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취급하는 걸로 안다"며 "경기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 바로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위험성을 간과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께 해당 사안에 대해 업계 전반을 점검했기 때문에 큰 리스크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2년에도 저축은행의 사업자 부실 주택담보대출이 말썽을 일으켜 금융당국이 대대적인 검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1년 안에 폐업할 경우 대출금액의 20%를 충당금으로 쌓게 하는 등 관련규제도 강화했다.

그럼에도 다시 편법대출이 고개를 드는 것은 최근 정부가 LTV와 DTI를 완화한 영향이 크다.

과거 은행과 보험업권은 50~70%까지만 대출해줄 수 있던 데서 정부 조치에 따라 70%로 일괄 완화되고 저축은행을 포함한 2금융권은 60~85%로 은행보다 높았던 것이 70%로 도리어 강화됐다.

금리는 1금융권보다 높더라도 많은 한도를 받을 수 있다는 2금융권만의 강점이 사라진 것이다. 신규 고객의 발길이 끊긴 것은 물론 기존 고객들도 은행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는 사례가 속출했다.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의 원인으로 지목된 부동산 PF 대출도 규제강화로 취급하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여신 늘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일부 저축은행에서는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다른 저축은행의 두 배에 달하는 1억원으로 책정, 광고하고 있기도 하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1금융권에서 신용등급 1등급도 받기 어려운 한도인데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1억원을 받는다 해도 원리금 상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저축은행 역시 "다른 저축은행에서는 연봉만큼만 빌려주지만 우리는 월급의 16배까지 대출해준다"며 뭉칫돈 대출을 광고하는 상황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금운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축은행들은 5%대 정기적금과 3%대 정기예금 특판을 내놓는 등 열심히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1%대로 주저앉은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OK저축은행이 출범을 기념해 선보인 연 3.2%의 정기예금 특판은 출시 3일 만에 한도 500억원이 동났다. 최대 4.3%를 제공하는 'OK끼리끼리 정기적금'도 판매되고 있다. 대구 지역 기반의 참저축은행은 연 복리이자율 3.3%의 특판 정기예금을 내놓자마자 하루도 안 돼 판매액 10억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SBI저축은행은 올 들어 연 4.2%의 고금리 특판 적금을 판매했다. 보험상품에 가입하면 최고 5.2%의 금리를 주는 상품이었다.

한 저축은행 임원은 "도를 지나친 영업과 경쟁심리가 저축은행 업계가 부실 이미지를 벗고 관계형 금융으로 나아가는 현시점에서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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