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無慾의 겨울산사 내마음도 홀가분

공주 갑사 '속세와 불국토의 경계'라는 사천왕문 너머 호젓한 산길에는 갖가지 활엽수들이 성장을 벗은 채 홀가분하게 도열해 있다. 개비자나무, 갈참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춘마곡추갑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정취가 빼어나다는 갑사(충남 공주)이지만, 화려했던 가을 옷을 훌훌 던져버린 겨울의 나목(裸木)들도 수수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어떤 욕심도 탐하지 않는 듯한 초연함은 무욕의 미덕을 곱씹게 했다. 저무는 한 해를 보내며 찾은 겨울의 갑사에서 도시의 찌든 마음 털어내고, 잠시나마 정신의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정기(精氣)'가 가득한 산으로 알려져 왔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가 수도을 이 곳으로 정해 새 세계를 열고자 했음은 유명한 일화. 당시 무학대사는 "주봉인 천왕봉(845.1m)이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닭 벼슬을 쓴 용의 모습'을 닮았다"며 산 이름을 '계룡(鷄龍)'이라 붙였다고 한다. 또한 '정감록'은 "금강산으로 옮겨진 내맥의 운이 태백산, 소백산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이 뭉쳐져 계룡산으로 들어가니 정씨가 팔 백년 도읍할 땅"이라며 계룡의 비범함을 뒷받침했다. 현대에 들어서까지 수많은 '신흥종교'들이 이 산을 본산으로 삼았던 일은 논외로 치더라도, 계룡산은 예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임은 틀림없다. 공주의 갑사는 계룡산의 맑은 기운과 한적함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공주에서 시내버스로 30분, 대전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이면 닿을 만큼 교통이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공주에서 19km가량 떨어진 국립공원 계룡산의 연천봉 서쪽 계곡에 위치한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년)에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웅전, 대적전 등 주요 건물들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가 선조 37년(1604년)부터 다시 지어졌다. 보유문화재로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갑사처당간 및 지주(보물 256호)와 고려시대의 갑사부도(보물 257호), 조선 선조2년간 월인석보판본(보물 582호) 등이 있다. 이처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사찰이지만, 겨울의 갑사는 아무래도 '사색'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을 듯하다. 두 갈래의 기막힌 산책로가 있기 때문이다. 길은 만남의장소에서 갈라지는데 사천왕문을 지나 절 입구까지 갖가지 활엽수가 늘어선 5리 길은 아늑하고,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대적전에 이르는 길은 더 없이 호젓하다. 우선 활엽수 길은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봄에는 키 작은 황매화 꽃이, 여름에는 시원한 녹음이, 가을엔 화려한 단풍이 여행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잎새가 져버린 겨울 길은 보는 즐거움 대신 영혼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계곡쪽 길은 소곤소곤 속삭이는 물소리를 벗하며 걷는 운치가 다감하다. 이 길은 온통 늘푸른 나무인 조릿대로 장식돼 있다. 산에서 자라는 대나무라 해서 산죽이라고도 하는 조릿대는 3~4m크기로 자라는 키작은 식물. 한겨울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청초한 푸른빛이 눈과 산사의 정취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갑사에서 금잔디고개와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넘어가는 숲길 산행도 권할 만하다. 4.7km거리에 3시간 가량 소요되는 산길은 가족산행으로도 무난하다.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접했던 이상보의 여행수필 '갑사가는 길'에 나오는 남매탑의 전설도 함께 음미해봐도 좋겠다. 수필 '갑사가는 길'에서의 계절은 지금과 같은 겨울이고, 산행길은 동학사~갑사 순이다. 공주= 글ㆍ사진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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