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CEO 칼럼] 직원·환자가 행복한 병원


필자가 지난 8월 병원장에 취임한지 1개월쯤 됐을 때로 기억된다. 마침 오후 시간 병원 내 한 화장실에 있었는데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 두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내용은 “나 같으면 아무리 아파도 A선생에게는 안가. 차라리 B선생님한테 가지. 아무리 실력이 좋으면 뭐해. 정이 안가는 걸” “맞아! 그 선생은 우리 같은 사람은 쳐다도 안 봐” 그냥 흘려 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막 원장에 취임한 필자로서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A교수는 해당 분야에서 꽤 이름도 있고 뛰어난 진료 능력을 가진 분이었지만 평소 직원들과 그렇게 친화적이지 못해서였는지 청소담당 직원들에게는 그렇게 폄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을 환자가 들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모든 직원이 자존감 느끼게 해야

필자가 병원장에 취임하면서 주어진 여러 과제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새로운 조직문화의 완성, 특히 서로 믿고 배려하며 휴머니즘을 실천하면서 직원들과 환자들이 행복해 하는 병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병원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다. 필자가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은 직원이 2,300명이나 되고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부터 최고의 엘리트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직급과 일하는 분야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직원 신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도 최고의 진료를 제공하는 전통을 자랑하는 품격 있는 병원으로 자부하지만 결국에는 환자를 잘 치료하고 환자가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껴야 그 값어치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의료진을 돕는 지원인력의 마음에 와닿는 진심 어린 도움이 없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필자는 전문경영인도 아니고 평생을 환자만 봐온 의사지만 병원장에 취임하면서 어설프게 경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 흔히 소통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여기저기서 행복경영이 키워드인 것 같다. 필자가 보기에는 소통과 행복이 서로 다른 의미가 아니고 과정과 결과의 차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은 과거에는 직원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가족 같은 분위기의 병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병원 규모가 커지고 직원이 많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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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필자는 원장에 취임한 후 전직원을 어떤 방법으로든 한 번씩은 직접 만나보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 중 하나는 주차ㆍ시설ㆍ청소 등 진료와 무관하지만 병원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부서를 찾아갔고 아직 2,300명 전직원을 모두 만나지는 못했지만 부서별 티 미팅, 회식 자리뿐 아니라 병원 로비 카페에서, 앞마당 정원에서 직원들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병원 일에 대해 서로 묻고 상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은 의사ㆍ간호사와 진료지원인력을 막론하고 직원들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하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병원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인정해주고 직종을 차별하지 않고, 성공적인 환자 진료에 모든 직원들의 역할이 있다는 자존심을 세워주고, 병원에 장기적인 전망과 확실한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단순히 급여를 올려주고 다독거리는 것보다 근무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을 더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 직종이 다른 직원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병원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서로 믿고 배려해야 환자도 만족

그 덕분인지 몰라도 요즘 병원 로비나 복도를 오갈 때 환한 얼굴로 스스럼없이 인사하는 청소담당 직원이나 젊은 직원들이 많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게다가 반가운 것은 병원이 국내 최고의 명품 병원이 되기 위해 또 한 번의 큰 도약이 필요한 이 시점에 병원 미래상에 대해 스스럼없이 묻고 병원을 위해 자신이 제안했던 아이디어가 반영되는지 궁금해 하고, 병원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견딜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젊은 직원들을 볼 때면 마음이 뿌듯하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공연히 움츠러드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작은 변화의 모습들을 보면서 환자가 행복한 병원은 역시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대한 직원들의 사랑과 자긍심, 그리고 직원 서로 간의 믿음ㆍ배려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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