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려진 재료였던 미국 CIT의 파산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주말 패닉 양상에 접어들었던 전 세계 금융시장은 7일 일단 진정 양상을 띄며 관망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CIT의 구조조정 과정 및 회생 방향이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와 복원 여력을 가늠케 해주는 중단기적 잣대가 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CIT그룹은 710억달러의 자산과 649억달러 부채를 지닌 미국의 20위권 은행으로 현 채무 규모는 3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CIT는 소매업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팩토링 타입의 대출에서 미국 내 가장 큰 규모의 업체로 현재 100만 중기 업체를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 CIT그룹은 작년 말 미 정부로부터 23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나 자금난이 지속됐고 지난 7월 정부의 추가 지원 획득에 실패하면서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이라 예상돼 왔다. 일단 CIT는 기존 파산보호신청 금융사와는 달리 어느 정도 충격파를 흡수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CIT는 채권자들과 채무를 주식이나 새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교환하는 방안을 협의해 왔지만 성사되지 않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시장 친화적인 '사전조정 파산보호'의 길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투표권을 지닌 채권단 90%의 지지를 얻어내며 조기 회생 가능성을 높였다. 계획에 따르면 채권단은 1달러 당 70센트 꼴로 기존 채무를 새로운 채무로 대체하며 업체의 만기 자금 상환 부담을 덜어줬다. 1달러 당 60센트 제공을 조건으로 CIT의 사전조정 파산계획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던 투자자 칼 아이칸도 10억 달러의 지원 자금을 내놓기로 하고 업체에 협력하기로 선회했다. 파산 보호 신청에 따라 CIT에 45억 달러의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점도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CIT는 성명을 통해 "재무재표상 100억 달러의 채무를 경감시키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파산보호 신청은 회사를 구조조정해 문을 열어두겠다는 업체 측의 최후의 시도"라며 "CIT는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연말까지 파산보호신청에서 벗어나겠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CIT의 이번 사례가 파산 위기에 처한 금융사의 회생 여부를 테스트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하면 고객들의 두려움이 커지면서 뱅크런 등이 가열되고 자산 매각 등이 지속되며 연쇄 도산 가능성이 높아 진다. NYT는 "그간 파산보호 신청은 사망선고로 간주되며 시장에 공포를 불러왔다"며 "그러나 이번 CIT의 경우는 채권단과 고객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CIT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고객들을 대상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힘든 과정은 다 지나왔고 파산보호 과정은 짧고 안정적일 것"이라고 말해 왔다. 업체는 이어 "지주회사가 파산보호에 돌입하지만 CIT은행, 유타주립은행 등 자회사들의 업무는 지속된다"면서 중기 대출 등 기존 업무를 변함없이 지속해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형 상장사들과는 달리 중기업체들은 기존 채무의 연장을 통해 사업을 영위해 오고 있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뇌관이 잠재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쟝 에버레트 히스코 바클레이의 대출 책임자는 "소형 채무자들에게 단기 관점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CIT의 대출 영역이 워낙 많은 영역으로 나뉘어 있어 아직 파급효과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찰스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도 "(이번 사태로 인해) CIT 대출 능력이 2년 전보다 20% 가량 약화될 수 있다"며 "이는 별다른 자금조달 수단이 많지 않은 중기업체 및 소매상들에게 장기적으로도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CIT의 무담보 채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업체는 75억 달러를 보유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이며, 뉴욕맬론은행이 32억 달러, 시티그룹이 21억 달러의 채권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