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3월 3일] 沙器와 스테인리스 그릇

어릴 적 어머니가 집에서 밥을 담을 때 쓰던 스테인리스 그릇을 없애고 어느 날부터인가 흙으로 만든 사기(沙器) 그릇을 내놓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물질문명의 발달로 스테인리스가 안방 깊숙이 침투했다가 다시 자연ㆍ웰빙 등 옛것이 좋다며 사기 그릇이 원위치를 찾았던 것 같다. 스테인리스가 경제개발과 고속성장의 상징어였다면 사기는 몇 천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한 풋풋하고 넉넉한 인간내음을 풍긴다. 이번주 개막하는 중국 연중 최대의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전국정치협상회의) 시즌을 맞아 중국 지도부의 행보를 보노라면 옛날 사기와 스테인리스의 추억이 떠오른다. 지난 1978년 개혁ㆍ개방 이후 경제개발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중국 지도부 내에서 농민, 도시 저소득층 등 대다수 소외계층을 돌아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성장의 성적표만 따지지 말고 성장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대다수 '인간'을 돌아봐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물론이고 현지 언론들은 '인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연일 양회 특집판을 싣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자신도 어릴 적 5명의 부모형제와 3평 남짓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했다며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집값을 어떻게든 안정시키겠다고 서민을 달랬다. 중국 지도부는 물론, 언론은 이번 양회를 앞두고 집권당인 공산당이 중국 인민의 행복을 위해 정책 집행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차기 후계자로 지목된 시진핑 부주석은 1일 "중국 공산당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복종해야 한다"며 "지도자는 인민의 입장에서 이들에게 봉사하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덩샤오핑의 먼저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先富論)'은 중국을 부국강병하게 만들었지만 빈부격차 확대, 사회가치 혼란 등 적지 않은 폐해를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해 중국 인민에 회자됐던 최고 유행어가 '페이(被ㆍ당하다)'였던 것도 이제는 중국 인민들이 더 이상 국가 시책에 마냥 순종하지 않고 할 말을 하겠다는 반증이었다. 갈수록 커지는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희망을 잃어가고 현대판 신분 세습제로 일컬어지는 '농촌 후코우 제도로 도시에 살면서도 의료ㆍ교육ㆍ양로 등 각종 복지혜택에서 철저히 소외당하는 중국 대다수 인민의 목소리가 응집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제 인민의 요구를 듣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온갖 이권과 결탁된 당ㆍ정 내부 부정비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양회 시즌의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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