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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의 단점에 비추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언쟁이 붙었을 경우 ‘네가 그랬잖아’ 라며 트집을 잡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점점 감정이 더 커져서 과거에 있었던 다른 갈등이나 상대방의 실수를 헤집어 내며 걷잡을 수 없는 관계로 치닫곤 합니다. 결국 ‘너 메시지 전달법’은 서로의 상처를 벌어지게 하기에 충분한 ‘지적질’이라는 게 소통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 메시지 전달법’(I message communication)이 나왔습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이 나빴던 감정, 인상 등을 솔직하게 말하라는 처방입니다. 이 방식은 둘 간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하기를 방지하는 해법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인 일본의 어느 승려도 나 메시지 전달법과 관련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기분 나쁜 사람이 있을 때 ‘나는 그가 밉다’고 100번 만 써 보고,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해 보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삭혀지면서 화가 난 원인을 서로 공유하고, 관계의 질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맥락이 담긴 주장입니다.
그러나 ‘나 메시지 전달법’은 과도한 자기 중심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합니다. 주변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심각한데, 모든 환경을 자기 프레임으로만 해석하고 제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사과가 대중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언니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겠다며 그룹사 임직원에게 발송된 이 글은 지나친 자기 중심적인 표현으로 눈총을 샀습니다. 언니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개인으로서의 책임이 아니라 대한항공의 경영진을 대표하는 책임자로서 사법 처리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일기 수준의 반성문을 쓰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하는 주장이 일었습니다. 대한항공의 마케팅 담당 임원이라는 자리는 개인 수준의 인식이 아니라 스스로 회사의 명운을 책임지고 있다는 제도적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지위입니다. 그러나 조 전무는 ‘2007년의 조현민보다는 더 전문적인 2014 조현민이지만’ 등과 같은 표현으로 사실상 인식의 저변이 의심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차라리 발표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법한 이 글은 각계로부터 재벌가 출신 경영자들이 조직을 얼마나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비판받았습니다. ‘나 메시지’ 전달법이 가져온 전략적 실패입니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좋지만 경영자의 글은 순수한 자연인의 일기여서는 곤란합니다. 지도자로서 타인과 소통할 때에는 자신이 조직 안팎에서 어떤 관점으로 평가될 것인가에 대한 객관화 기제가 필요합니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연설문 작가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던 것도 경영자 스스로의 명의로 발표되는 글이나 연설이 갖고 있는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영자 자신은 ‘나’이지만 절대로 ‘혼자만의 나’는 될 수 없습니다.
한때 최고경영자(CEO)나 정치인들이 직접 SNS를 통해 자기 생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소통 방식이 진정성 있는 모습처럼 비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고 말한 어느 축구 감독의 말처럼 조직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워 할만한 이슈들을 발생케 하는 ‘자기 의견’들도 자주 드러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누구나 말실수를 할 수 있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할만한 이슈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일본 정치인들처럼 의도적으로 망언을 통해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망언은 반복되면 당사자가 아니라 그가 소속한 커뮤니티 전체의 신뢰가 의심받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한항공 사태는 경영자들에게도 소통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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