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랍사태 41일째를 맞아 전격 합의된 한국인 인질 전원 석방은 한국정부 대표단과 탈레반의 지속적인 ‘물밑 외교’의 결과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동안 양측은 지난 10일 첫 접촉을 가진 뒤 이튿날 협상을 재개, 김경자ㆍ김지나씨 등 여성 인질 2명의 석방 합의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남은 인질 19명의 석방조건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왔다.
하지만 이후로 양측은 위성전화 등을 통한 접촉을 유지하면서 물밑 교섭을 벌여왔고 이날 협상이 재개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상당 부분 사전합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전합의를 바탕으로 협상이 재개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면접촉에서 긍정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앞서 협상을 중재한 현지 소식통도 이날이 마지막 협상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상당히 긍정적인 협상결과가 나올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그는 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겠다면서도 “양측이 서로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기분이 흡족하다”며 “협상 뒤 인질 전원 석방 발표도 기대할 만하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혔었다.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도 이날 대면협상에는 보증인 역할을 담당할 제3자도 참여, 양측이 최종합의에 대한 후속절차를 진행 중임을 암시했다.
다만 석방되기로 한 19명의 인질이 곧바로 풀려나 우리 측이 신병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날 교도통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 중인 한국인 인질을 풀기 위한 한국과 탈레반 측의 직접 협상을 중개한 가즈니주의 한 원로 인사의 말을 인용, 인질석방의 조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군 부대가 철수하고 한국의 민간인 전원이 출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협상 타결에 앞서 미국 CBS방송은 탈레반 간부의 말을 따서 대면접촉 후 남은 인질 19명 중 여성 3∼4명이 우선 석방될 것이고 나머지 인질들도 소그룹으로 나눠 몇 주에 걸쳐 석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탈레반은 인질 전원을 다음달 중순 시작되는 이슬람 최대 명절 라마단에 앞서 풀어주되 인질을 여러 그룹으로 나눠 순차 석방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남은 인질을 한꺼번에 석방시키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인질이 남아 있게 되면 생명의 위협에 계속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전원을 동시에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 대면접촉에서 일괄타결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양측이 인질석방의 큰 틀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탈레반 내부의 강온파 대립이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고 그럴 경우 대면접촉의 합의이행이 늦춰지거나 심지어는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구체적으로 합의사항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를 놓고 양측에서 이견이 나올 경우 인질석방은 상당 시일 미뤄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