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도유예협약 전면재검토 왜할까/갑작스런 정책변경 ‘의구심’

◎3일만에 입장바꿔 “기아압박용” 시각/금융시장 불안부채질… 정부불신 더해재정경제원이 「강경식모델」이라 부르며 새로운 부실기업정리 수단으로 자랑하던 부도유예협약을 전면 폐지키로 하루아침에 입장을 돌변,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강경식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은 28일 『부도유예협약의 현행 유지, 보완, 법제화, 폐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부도유예협약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부도유예협약이 자금시장 안정 등에 기여한다며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뒤 폐지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지난 26일의 국회답변이 불과 사흘만에 1백80도 뒤집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금융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개월째 협약 관철을 고수하던 정부가 정책실패를 자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전면 재검토」를 들먹이게 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각종 수단을 거의 망라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기아해법이 빠졌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금융시장에서 먹히지 않은 채 불안이 지속되고 교란이 증폭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때문에 금융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기아 압박」작전이 부도협약 재검토로 다시 시작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부도유예협약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제도는 좋은데 대상기업이 악용할 경우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점을 들고 있다. 재경원 고위당국자는 『대농, 진로의 경우 부도유예협약이 자금시장에 부담을 주지않고 상당한 효과를 봤는데 기아가 이를 악용함에 따라 갖가지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고경영진의 사퇴서 제출을 둘러싸고 기아처리 해법이 꼬여 부도유예협약기간(2개월) 만큼 자금시장의 동요를 연장시키고 국민경제에 도리어 부담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아에 이어 제2·제3의 기아가 속출할 경우 무조건 부도를 유예해 놓고 자구노력 등을 협상하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마땅한 대응방법 없이 정부와 은행이 질질 끌려가며 상황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농, 진로의 경우 경영권 포기각서((주)진로는 제외)를 내고 채권은행단과 대상 기업과의 협조로 회생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살리고 일부기업은 양도, 청산키로 하는 등 자금시장의 동요를 최소화하면서 부실기업처리에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자금시장, 금융기관, 대상기업, 국가경제가 모두 도움을 받는 등 제도도입 취지가 달성됐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금융권의 입장과 다소 차이점이 있다. 부도유예협약의 시행이후 악성루머에 빠진 기업에 대한 자금회수 소동, 이에따른 자금시장의 연쇄동요 등을 금융권은 부도유예협약의 문제점으로 지적해 왔는데 정부는 이같은 사항은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 이같은 정부의 태도는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을 봉쇄하면서 부도유예협약을 유지, 보완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당장 폐지할 경우 연쇄부도 등을 막을 대안이 마땅치 않고 재계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어 보완대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되지 않겠느냐는게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재경원은 이와 관련, ▲협약적용 전에 주식포기각서나 경영권포기각서를 제출토록 하고 ▲협약시행이후라도 대상기업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때 부도협약기간내에 조기에 부도처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은 주식포기 각서 협상을 벌이는 기업에 대한 조기 자금회수를 유발하고 해당기업의 회생가능성을 살펴본다는 취지로 부도를 연장하는 당초 제도도입 취지와 관계없이 「각서」한가지만을 이유로 부도를 단행한다는 모순을 가지고 있어 시행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때문에 만족할만한 보완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정부가 마땅한 대안도 없이 공연히 정책 번복을 일삼아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최창환 기자> ◎관련제도 어떤게 있나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28일 밝힌 부실기업관련제도 정비방안은 개별법에 따로 규정돼 있는 기업퇴출관련제도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 효율화를 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행 기업퇴출관련제도는 다음과 같다. ▲파산제도= 채무자가 빚을 모두 갚을 능력이 없을 경우 법원이 채무자의 재산을 현 시가로 계산, 파산법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채권자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제도. 파산원인이 지급불능·지급정지·채무초과 등인 경우에 적용된다. 채권자나 채무자 어느쪽에서든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화의제도= 일시적으로 어려움만 넘기면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채권·채무자가 합의, 빚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유예시켜주는 제도. 화의법과 파산법에 따라 채무자측에서 신청한다. 채무자가 당장 파산을 면할 수 있으며 채권자는 채무자가 망해 문을 닫는 경우에 비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을 더 많이 돌려받을 수 있는게 장점. ▲회사정리제도(법정관리)=파산위기에 몰렸지만 회생가능성이 있는 주식회사의 회생을 법적으로 뒷받침, 기업도산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파산에 직면한 회사나 주주 또는 채권자가 신청할 수 있으며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일 경우 채무가 동결된다. 또 법원이 선임한 관리인이 경영정상화 노력을 통해 회사를 회생시키는 제도다. ▲회사청산제도=상법에 따라 해산한 회사의 남은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 주주·채권자 등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게 특징. 해산이유가 합병파산인 경우는 제외된다.

관련기사



최창환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