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전체주의의 종말

최근에 필자는 피터 드러커가 지난 1939년에 발간한 최초의 저서 ‘경제인의 종말’을 번역했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의 지적 전통과 기독교 신앙에서 나온 ‘자유와 평등’을 지상의 가치로 삼는 유럽인들이 전체주의(독일에서는 나치,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를 허용하고 또 찬미한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했다. 유럽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과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자유와 평등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전쟁과 실업의 공포를 해결해준다면 그 대가로 자유와 평등도 포기하고 전체주의를 수용하겠다고 오판을 했다는 것이 드러커의 결론이다. ‘경제인의 종말’은 1938년 뮌헨조약 후 겨우 몇 달이 지나기도 전에 히틀러는 ‘달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분석했고, 아돌프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스탈린의 공산주의가 곧 서로 협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중심의 전체주의를 추진하고 또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 모두를 군인으로 만드는 군국주의를 지향하고 있는데, 군국주의란 곧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으로 분석하고 예측했다. 몇 년 후 드러커의 분석과 예측은 옳았음이 증명된다. 18세기 중엽 시작된 자본주의는 자유경쟁과 합리성에 기초한 ‘경제인 개념’을 바탕으로 100년 이상에 걸쳐 발달한 결과,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됐다. 그러자 유럽 사람들은 경제적 성취를 안겨다준 경제적 자유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는 자본주의 이전의 구질서 아래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 즉 기능공들과 농노들에게는 정말이지 그런 식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유는 오직 두려움만 안겨줄 뿐이었다. 경제적 자유는 그들의 얼마 되지도 않는 상속 농토, 시장을 보호해 주던 관세 장벽, 길드가 유지하던 최저 임금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이 경제적 자유를 받아들인 것은 오직 자본주의가 궁극적으로 사회적ㆍ경제적 평등을 이룩한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현실은 불평등이었다.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재산을 빼앗아 프롤레타리아에게 분배함으로써 계급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마르크스사회주의가 등장했다. 마르크스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도 경제인 개념을 바탕으로 했다. 다만 자본주의가 개인의 사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반면, 공산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공산당이라는 특권계층을 만들어 평등은 물론이고 자유마저도 희생시켰고, 오히려 한층 더 불평등한 계급사회가 됐다. 공산주의가 언제 사실상 막을 내렸는가 하면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날이다.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주장했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노동자들로 구성된 각국의 군대는 역시 노동자들로 구성된 상대국의 군대에게 서로 총을 쏘았다. 국제 노동자들은 단결한 것이 아니라 생사를 건 경쟁을 했던 것이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좌파들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막기 위해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각국의 노동자는 생산성 향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정치가들과 일반 독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윈스턴 처칠의 등장으로 서구의 자유와 평등은 전체주의의 손아귀를 벗어났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드러커가 이런 통찰력 있는 책을 쓴 것은 1929년부터 약 3년간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를 하면서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의 연설을 듣고 직접 인터뷰 했기 때문이었다. 괴벨스는 “농산물 가격의 인상으로 농민의 소득은 올리고 도시의 노동자는 빵 값의 인하로 생활비를 줄이도록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분명 모순이었지만 청중들은 그런 거짓 선전술에 오히려 열광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나치의 선전을 기껏 선거용 슬로건으로 받아들였던 반면, 드러커는 나치즘의 폭풍이 곧 불어 닥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드러커는 나치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 했다. 하지만 드러커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람이 순진하기는.....쯧쯧”하고 타박을 받았다. 전쟁과 실업을 막아준다는 약속만으로 자유와 평등을 포기하고 전체주의에 귀의했던 일부 유럽인들과 같이 혹시 우리 가운데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말만 나오면 자유와 평등을 포기하겠다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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