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봉합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이번에는 경기침체의 어두운 그림자가 시장의 예상보다 더 짙어지고 있다.
민간 시장조사 업체인 마켓이코노믹스는 3월 유로존 제조ㆍ서비스업 복합 구매자관리지수(PMI)가 48.7을 기록했다고 2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전달보다 개선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치와 정반대의 결과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블룸버그조차 유로존의 3월 PMI가 49.6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실제 결과는 더 우울했다. PMI는 경기흐름을 내다볼 수 있는 지표 가운데 하나로 50 미만이면 향후 경기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인들이 많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유럽 경제를 힘겹게 견인해온 독일에서 경기하락세가 나타나는 게 가장 큰 부담이다. 독일의 3월 제조업 PMI는 48.1을 기록해 올 들어 처음으로 기준치인 50선을 지켜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올 1ㆍ4분기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4ㆍ4분기에 이어 다시 한번 마이너스 성장을 해 '기술적 경기침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마켓의 크리스 윌리엄슨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어 정책 결정자들이 경기부양 카드를 다시 한번 꺼내 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PMI 외에 다른 주요 경제지표들도 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유로존의 지난 1월 실업률은 10.7%로 유로존 출범 이후 사상 최고치를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1월 산업주문량 역시 전달 대비 2.3% 줄었다.
경기전망이 악화하면서 한동안 안정세를 나타냈던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금리도 상승(가격하락)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스페인 10년물 국채금리는 5.494%로 3월 들어 0.626%포인트 뛰었다. 이는 스페인 국채에 대한 투자심리가 또다시 위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이탈리아 10년물 국채금리는 5.096%로 6일 이후 처음으로 5% 선을 돌파했다.
문제는 이들 위기국의 채권금리가 뛰어오르더라도 제어할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도이체방크의 자일스 모에크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중앙은행(ECB)이 1조유로가 넘는 막대한 유동성을 시중은행에 공급해 국채금리를 떨어뜨렸지만 이제는 이 정책의 약발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ECB 등은 추가 지원책 마련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역시 이달 초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비(非)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영원히 유지되기 어렵다"고 밝혀 장기대출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경제성장이나 채권시장 안정과 같은 주요 정책목표는 이제 ECB가 아닌 각국 정부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