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1,800명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부도덕한 도청 일삼는 미국을 규탄한다!'요즘 얘기가 아니다. 1978년 4월 관제(官製) 반미데모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는 한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상황. 선거공약인 주한미군 철수를 강행하려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감정이 들끓었다. 한국의 인권을 문제 삼던 카터에게 반감이 심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은 고등학생까지 동원되는 전국적인 반미데모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대사관 도청 공방전을 벌였다. 두 나라는 도청 의혹을 부인했으나 진실은 달랐다. 둘 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들여 도청에 나섰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미국은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의 도청 방지시설을 갖추기 위해 상층부 2개 층을 완전히 뜯어내어 새로 짓는 데 15년이라는 공사기간을 들였다. 소련은 워싱턴 주재 대사관을 1987년 완공하고서도 도청을 의심해 입주하지 않다가 해체돼 결국 러시아가 대사관을 물려받았다. 도청과 도청 방지는 이토록 민감한 사안이다.
△도ㆍ감청으로 가장 재미 본 국가는 1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에 보낸 전보를 빼돌려 언론에 공개하자 미국 전역이 분노에 빠졌다.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해준다면 승전 뒤에 텍사스 등의 영토를 멕시코에 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격앙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팽팽하던 전황은 연합국 우세로 돌아섰다. 도청 덕을 가장 많이 본 개인은 에드거 후버. 도청을 통해 확보한 역대 미국 대통령의 비리와 비밀을 무기로 죽을 때까지 48년간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장으로 군림했다.
△미국의 도청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38개국의 재미 공관을 도청한 사실이 폭로된 것. 유럽연합(EU)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교착을 경고하고 나섰다. 독일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아무런 대응이 없던 한국은 뒤늦게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정도다. 맹목적 사대주의, 꿀 먹은 병아리가 아니고서야 주권 침해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될 일이다. 차라리 관제데모라도 벌이던 35년 전이 지금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