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제조업을 살리자

내우외환이 한꺼번에 밀어닥칠 때는 눈앞의 어려움에만 신경 쓰느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기 쉽다. 우리 사회도 이라크전쟁과 북핵 문제, 경기침체와 금융시장의 혼란 등 안팎의 시련에 부딪히면서 정작 산업 경쟁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제에 소홀히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과 후발개도국의 틈바구니에서 넛크래커 안의 호두처럼 심각한 위험상태에 빠져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97년 `부즈알렌보고서`에서다. 한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경고가 있은 지 벌써 6년이나 됐지만 아직까지도 경제의 체질과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강화되지는 않았다. 각종 통계로 미뤄볼 때 지난 몇년간 우리 산업은 오히려 기반이 취약해지고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국제연합(UN)의 통계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전세계 5,000개 주요 교역 품목 중 우리가 1위를 차지한 품목수는 IMF 이전보다 10여개 줄어든 80개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487개에서 731개로 크게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이처럼 경쟁력 위기가 우리 산업의 숨통을 죄는데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이른바 첨단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다 해도 제조업은 앞으로 10년간은 우리를 먹여 살릴 중요한 산업이다. 인류가 존재하고 또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한 굴뚝에 연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산업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신설된 법인 중 제조업의 비중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새로 창업하는 제조업체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76%가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있거나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해온 제조업이 점차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물론 이제는 공동화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제조업 퇴조현상을 국민생활이 나아지면서 서비스 부문이 양적ㆍ질적으로 발전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 선진국의 경우를 봐도 경제가 발전할수록 제조업의 비중이 낮아지는 만큼 이 비율이 30%로 떨어졌다고 해서 걱정할 일은 아니다는 반론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의 생각과는 달리 제조업 공동화현상은 실제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아직까지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선진국이 되는 관문을 통과하려면 지속적인 성장과 경상수지의 흑자기조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 원동력이 되는 게 바로 제조업이다. 선진국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제조업 공동화는 실업의 증가와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미국도 전통제조업을 등한시한 대가로 정보기술(IT) 신경제의 엔진이 작동하기까지 80년대 내내 힘든 구조조정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내외 여건변화에 취약한 우리 경제가 제조업의 기반마저 상실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큰 시련을 겪어야 할지 걱정이다. 일부에서는 섬유나 신발 같은 굴뚝산업은 부가가치가 낮아 별 실익이 없으므로 차라리 중국 등 신흥개도국에 넘겨주고 아예 산업구조를 첨단 신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생명기술(BT)ㆍ나노기술(NT)과 같은 첨단 신기술 분야는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실용화되기까지 시일도 오래 걸린다. 또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선진국과의 경쟁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미래를 걸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이렇게 볼 때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과 제조업 연관산업을 답보상태에 놓아둔 채 실물경제를 살리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제조업에 활력을 다시 불어넣어야 한다. 우리 경제는 6년 전 넛크래커 위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제는 주력 산업인 자동차ㆍ조선ㆍ반도체 등의 분야마저 5년 내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우리가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면 그것은 IMF 때와 같은 외환위기가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의 위기일 거라는 지적도 이미 나왔다. 이처럼 위험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도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장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들이 많지만 그 중 제조업의 기반을 탄탄히 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제조업 공동화를 방지하고 전통산업에 신기술을 접목,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에 노력해야 할 때다. 전세계의 2,000개 우량기업 중 80%가 굴뚝산업이라는 점은 제조업이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탈리아ㆍ독일 등의 선진국이 아직도 세계적인 섬유수출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인건비 부담이 클지라도 산업정책과 경영전략만 잘 세운다면 기존 제조업의 경쟁우위를 얼마든지 지켜나갈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현석(대한상공회의소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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