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정책은 제도만으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이에요. 다만 우수한 정책에 걸맞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아직도 턱없이 낮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혜경(43)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UNESCAP) 여성정책자문관은 22일 “국가 제도나 정책적 측면에서 많은 노력과 재원을 투자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여성정책은 유엔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면서도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문제라든지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한국에서 여성의 위치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3년간 그가 겪은 아시아 지역 내 여성차별의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낮았다. 탈레반이 지방권력을 행사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여성 차별을 비롯해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간통한 여자를 가족이 직접 살해하는 이슬람권의 ‘명예살인’도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의 사유재산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물론 파키스탄에서는 여성에게 공공연하게 염산테러를 가해 여성의 온 몸이 문드러지는 경우까지 있다.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 문제가 여성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삶의 수준과 여성 문제가 결코 분리되지 않다는 거죠.” 우리나라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극빈층에서 벌어지는 여성 차별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고 노령여성, 장애인 여성의 인권 문제 역시 극단적인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자문관은 “제도를 바꾸는 건 차라리 쉬운 문제”라며 “이젠 사회적 관습과 문화 인식을 바꿔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오히려 여성 차별 해소의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자문관은 지난 2004년 여성부(현 여성가족부) 사무관 신분으로 태국 방콕에 본부를 둔 UNESCAP 과정급 정규직원으로 채용돼 만 3년째 일하고 있다. 아태 지역 국가들의 경제ㆍ사회 발전을 위해 각종 역할을 하는 유엔 산하 기구 UNESCAP에서 이 자문관은 이 지역 여성 관련 정책 연구 및 관련 프로젝트 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94년부터 이미 세계식량기구(WFP)와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에서 활약한 사실상의 국제공무원 1세대다. 그는 지난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후 그의 일터인 국제기구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반 총장은 우리에게 굉장한 영광이자 부담”이라고 말하는 이 자문관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답지 않게 한국의 세계 공적원조의 현실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요즘 한국 분위기는 마치 반 총장 개인의 성공사례로만 보려는 것 같아 아쉽다”며 “반 총장을 통해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와 이미지를 높이고 우리의 인식도 새롭게 하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