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강제철거' 상도5동 달동네 폐허속 230여일

"짐승만도 못한 놈들"… 두 다리 없는 할머니 이불로 싸 길거리 팽개쳐<br>"국유지에서 40년이나 살아왔는데"…갑자기 소송걸려 학원설립자에게 넘어가

따가운 5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19일 오후 서울상도동에서 숭실대 방면으로 뻗은 도로의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500여m를 올라가면 조금 전 지나온 도심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동작구 상도5동 산64번지 일대 3만7천여 평의 달동네. 1960년대부터 400여가구가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아왔던 이 곳은 이제 곳곳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철거 잔해만 즐비한 폐허가 돼버렸다. 무너진 집터 위로 `철거민 대책위원회' 깃발이 펄럭이는 이 곳은 18가구 50여명의 철거민들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다. 누렁이가 낮잠을 즐기고 노인들이 한가로이 쉬는 마을 풍경은 언뜻 보기엔 평화로웠지만 골목길 벽마다 붉은색 스프레이로 낙서된 `결사투쟁' `죽을 수는 있어도타협은 없다'는 비장한 문구들이 이 곳의 평화는 잠시 뿐이라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골목길 끝 합판과 비닐 장판으로 엉성하게 지은 임시건물에서 만난 이영숙(67)할머니의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은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는 분노였다. 지난해 10월1일 새벽 5시30분 새벽잠에서 채 깨기도 전 이 곳 주민들은 갑자기들이닥친 수백명의 철거용역 직원들에게 끌려 순식간에 집밖으로 내팽개쳐졌고 이들의 집은 철거돼 동이 트기도 전에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한국전쟁 때 피난가다 차에서 떨어져 두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뒤 40여년 째 이 곳에서 살아왔다는 이 할머니는 철거반원에게 들려서 끌려나와 살림살이하나 건지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내가 6ㆍ25도 겪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어요. 철거를 막아보려고 옷을 발가벗고 버티는데 장정들이 들이닥쳐 나를 이불로 싸서 길거리에 내놓는 거요" 할머니는 아직도 그날의 분을 삭이지 못한다. 지금 이 할머니가 사는 집은 강제철거 뒤에 마을 사람들이 골목길 한 쪽에 지어준 가로 2mㆍ세로 1m의 `판잣집'이다. 휠체어도 없어 거동을 할 수 없는 이 할머니는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 `판잣집' 안에 철거를 당한 동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냉장고며 옷가지를 들여놓고 살고있다. 세수조차 하기 힘든 몸이라 이 할머니는 지난해 철거 이후 아직까지 목욕을 한번도 못했다고 한다. 지난 겨울에는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았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을막아주기에는 합판 한장으론 부족했다. 치우지도 않은 철거잔해가 널려있는 마을에는 모기와 파리가 들끓어 요즘엔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겨울에는 추워서 난리였지. 이제는 더워서 꼼짝도 못해. 파리 모기 때문에 문도 못 열고 판자더미 속에서 산다오" 할머니는 한숨만 지었다. 지난 설에는 교회와 자선단체에서 보내준 쌀로 철거민들끼리 떡국을 끓여먹었지만 이젠 그나마 보내준 쌀도 떨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철거민들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각오다. "우리도 여기서 40년 살아오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살아온 국민이오. 평생을 살아온 내 동네에서 날벼락처럼 쫓겨날 수는 없지 않겠소. 나는 죽어도 여기서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랍니다"며 이 할머니는 고단한 손으로 누렁이만 쓰다듬었다. 이 곳 3만7천여 평의 땅은 원래 국유지였다. 정부는 1960년대 이곳에 한국전쟁 상이용사(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집을 지어줬고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됐다. 하지만 갑자기 재단법인 한양학원 설립자가 이 곳 2만5천여평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수십년의 법정공방 끝에 지난 1998년 법원은 한양학원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 정책에 따라 수십년을 이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졸지에 남의 땅을 무단 침범한 무허가 건물 주민이 돼버린 것. 이후 한양학원은 이 곳에 아파트를 짓고 싶어하는 한전지역조합에 땅을 팔기로했고, 지난해 10월1일 법원 판결에 따라 `사유지 침범'을 이유로 강제 철거를 했었다. 쫓겨난 철거민들은 매주 동작구청 앞에서 `이주대책 없는 강제철거를 묵인한 구청'에 대한 항의집회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 사업승인도 나지 않은 만큼 이주대책 마련을 논의할 구체적인 협상 당사자조차 없는 상황이다. 구청 관계자는 "이곳은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아닌 지역조합에 의한 건축인 만큼법적으로 이들을 구제할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다"며 "조합측에서 제시한 보상액과이들의 요구에 차이가 커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지역조합이 토지를 사들이고 사업계획을 제출하고 착공할 때까지 아직 남은 일들과 이들 철거민이 견뎌야 할 시간은 길고도 멀다. 혹독한 겨울을 판잣집에서 견뎌낸 철거민들은 따뜻한 봄날도 잠시, 곧 시작될장마철과 이어질 무더위를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장마가 시작되면 가파른 달동네 길에 철거잔해가 쓸려내려 올 것도 걱정이고 벌써부터 들끓는 모기와 파리 때문에 위생문제도 걱정"이라면서도 "끝까지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서로를 북돋웠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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