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외제안가리고 값비싸도 날개 돋쳐회사원 정재훈(30)씨는 며칠 전 두 살짜리 조카에게 줄 추석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 유아복 매장을 둘러 보다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 씨의 눈엔 인형 옷처럼 보이는 아이 옷이 성인 의류 못지않게 비쌌기 때문.
"조카 딸에게 주려고 원피스를 하나 골랐는데 매장 직원이 벨벳 제품이라며 가격이 35만원이라고 하더군요. 그 정도면 일반 여성복 가격과 비슷하지 않나요"라며 정 씨는 혀를 내둘렀다.
롯데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한 유아 의류 매장에서 판매하는 벨벳 소재 여아 원피스 가격은 20만~30만원 정도.
하지만 이 매장엔 더 비싼 제품도 있다. 매장 앞에 진열된 자그마한 양 가죽 재킷에는 95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옷 구입을 주저하지 않는 부모들이 이 매장을 한번 찾으면 100만~200만원 어치 옷을 쉽게 사간다는 게 매장 점원의 설명이다.
1~2명의 자녀만을 둔 부모들의 자식 사랑과 관련 업체의 고급화 전략이 맞아 떨어지면서 소비재 시장의 전반적인 명품 바람이 유아 관련 시장에서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유아복 업체 이에프이의 경우 지난 2000년부터 '해피랜드'브랜드 고급화 작업에 착수, 브랜드 명을 '해피랜드 프리미에'로 변경한 후 매출이 230억원에서 260억원으로 늘어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일반 가두점에서 판매되는 '해피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브랜드 명을 아예 '프리미에쥬르'로 변경한 올해는 매출이 360억원 대로 늘어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하고 있다.
아가방도 이 달부터 크리스찬 디올에서 유아복 디자인을 담당했던 디자이너 홍은주 씨와 함께 고가 브랜드 '아가방 에뜨와'사업에 뛰어들었다.
유아용 화장품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500억원 대의 큰 변동 없는 안정적 시장이지만 관련 업체들은 '고급화'를 생존전략으로 삼고 있다. 가격대가 일반 제품보다 2~3배 비싼 '누크 프레스티지'를 내놓은 보령 메디앙스가 좋은 예다.
유아관련 시장에서 수입 브랜드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신사동 가로수 길엔 프랑스, 영국, 호주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세련된 인테리어와 희소성 있는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 앞으로도 이런 매장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유아용 화장품 시장에도 명품 바람이 불고 있다. 불가리, 버버리, 지방시 등이 유아용 로션, 목욕용품, 향수 등을 국내에 출시하고 명품을 좋아하는 젊은 엄마들을 공략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부모들은 비싼 제품을 선호한다"며 "유아용품 시장의 전반적 부진 속에서도 고가 제품을 팔고 있는 백화점 매출만은 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세 살짜리 여아를 둔 이선화(32) 씨도 "아이 옷이나 화장품을 고를 때마다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은 하지만 결국엔 하나 밖에 없는 딸에게 기왕이면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 고가 제품으로 손을 뻗게 된다"고 말했다.
정영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