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로 지친 몸으로 맞이한 아침,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가죽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발견된 북극 곰의 주검…. 얼음에 뒹구는 북극 곰을 떠올리며 더위를 식히는 상상마저 허용하지 않는 세상이란 말인가. 녹아버린 얼음과 먹이를 찾아 헤매다 굵어죽은 북극 곰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도시인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초래한 기후변화다.
△열대야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일본. 기후관련 수필가인 구라시마 아쓰시가 기상청에 근무하던 1967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부터 간헐적으로 쓰이다 혹서가 맹위를 떨친 1994년 빈도가 늘어나더니 아예 일상어로 굳어버렸다. 영어권에서는 열대야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지만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는 비슷한 용어가 있다고 하는데 기준이 섭씨 20도 이상이란다. 한국과 일본의 기준은 섭씨 25도 이상. 같은 열대야라도 동북아가 유럽보다 지독한가 보다. 지구온난화 탓인지 요즘엔 초열대야(섭씨 30도 이상)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조상들은 열대야를 모르고 지나갔을까. 조선왕조실록 영조 23년(1747년) 6월28일의 기사에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비록 찌는 듯 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라는 표현이 나온다. 열대야에 딱 들어맞는 구절은 이게 전부니 지금보다는 덜 덥지 않았을까 싶다. 주목할 대목은 혹서가 닥치면 역대 국왕들이 죄수 석방령을 내린 사례가 무수히 많다는 점이다. 백성의 원망이 모이면 하늘이 노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더위 탓에 흉해질 수 있는 민심을 어르는 효과는 냈던 것 같다.
△날이 사나우면 사람도 변한다. 영국에서는 한여름을 '개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밤낮 없는 찜통 더위에 들리는 소식들이 짜증을 유발하는 계절이다. 한치도 양보 없는 여야가 그렇고 남과 북 공히 벼랑 끝 전술을 쓰는 듯한 개성공단 사태가 그렇다. 굶어 죽은 북극 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장마 물가에 서민의 살림살이는 날로 궁핍해져 간다. 백성의 불쾌지수가 오르면 감옥 문을 연 조상의 지혜가 그립다. 하늘에서, 정치에서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