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양극화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경기 사이클의 진폭(변동성)이 커지고 장기적으로는 성장기반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한국은행에서 제기됐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성장촉진형 재분배 정책’이 시급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22일 ‘경제양극화의 원인과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양극화 현상이 ▦수출과 내수 ▦IT기업과 비IT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등 각 부문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 경제구조가 취약한 상황에서 내수부진까지 겹치면서 양극화의 정도가 과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
한은은 경제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경제구조적 원인으로 ▦수출이 국내 투자와 고용증가로 이어지지 못하는 산업연관관계 미약 ▦기술개발 투자 부족으로 인한 중소기업 성장기반 취약 ▦고용구조의 악화와 소득재분배 기능의 미흡 등을 꼽았다.
이로 인해 IT 중심의 수출기업은 호황을 누리는데 고용과 투자는 늘지 않고 대기업은 이익이 급증하는데 중소기업은 도산위기에 몰리고 있으며 소득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넘쳐 흐르는 물이 바닥을 고루 적시는 것처럼 선도 부문의 경제적 성과가 커지면 낙후 부문에도 혜택이 돌아가는 이른바 ‘적하(滴河ㆍtrickle down)효과’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
문제는 양극화 현상이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준경 금융경제연구원 과장은 “수출ㆍ내수 양극화에 따른 수출 의존도 확대로 인해 우리 경제가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심하게 출렁이는 ‘민감체질’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 과장은 또 “특히 소득 양극화는 저소득층의 교육기회 박탈로 이어져 우리나라 인적 자본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이러한 양극화 현상의 해결책으로 ‘성장촉진형 재분배 정책’을 제시했다. 정부가 세수 등을 재원으로 저소득층의 교육훈련 등을 지원해 소득수준을 높여갈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 과장은 “미국의 경우 계층간 학자금 이용 가능성을 완전히 평등하게 할 경우 장기균형 GDP 수준이 3.2% 증가한다는 분석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며 “상위 30% 소득계층이 하위 70% 계층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GDP의 6%를 재분배할 경우 장기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란보다는 성장을 목표로 한 교육 재분배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 특히 경제가 성숙단계로 진입할수록 질적 성장의 중요성이 커지며 여기에는 우수한 인적 자원 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 고리 회복도 현재 우리 경제가 맞닥뜨린 시급한 해결과제로 꼽혔다. 이를 위해서는 소재부품산업을 육성해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기업의 투자여건 조성을 위해 제반 규제를 최대한 완화해야 하고 소비 활성화를 위해 신용불량자의 신용회복뿐 아니라 고용구조 개선 등 근본대책이 필요하다고 한은은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