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영호(42·가명)씨는 요즘 주말이면 아내를 대신해 요리사로 변신한다. 처음엔 TV 프로그램인 '아빠 어디가'를 본 아들의 성화에 떠 밀려 부엌에 들어왔지만 이제는 "이번 주에는 ○○ 요리를 해줄까"라고 먼저 제안한다. 연어나 라면 등을 활용한 레시피를 찾아 요리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매번 다른 재료와 방법으로 '아빠표' 요리를 해주다 보니 퇴근 후 지하철에서 최신 유행 레시피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게 어느새 일상이 됐다. 이 씨는 "주말마다 요리를 해주면서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며 "'주말에는 아빠가 △△△△ 요리사'란 어느 라면 광고 문구처럼 어느새 음식 만드는 게 새로운 취미가 됐다"고 말했다.
'먹방(먹는 방송)' 열풍 속에 나만의 방법으로 요리를 만드는 소비자가 늘면서 바야흐로 '1인 1레시피' 시대가 활짝 열렸다. 수정을 의미하는 'Modify'와 소비자 'Consumer'가 합쳐진 '모디슈머' 문화가 확산되면서 '나만의 레시피'가 개인 블로그의 핵심 내용이자 지인들과의 주요 대화거리로도 등장할 정도다. 이에 따라 식품기업들도 발맞춰 모디슈머를 겨냥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레시피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식품이 아닌 레시피를 파는 셈이다.
연어 캔 시장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CJ제일제당과 동원F&B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 CJ제일제당은 지난해 4월 연어 캔 '알래스카 연어'를 출시한 이후 대형마트에서 레시피 카드를 고객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펼치고 있다. 주요 레시피는 김치찌개와 파스타, 샐러드 등 수십가지에 이른다. 또 최근 연어 비빔국수와 연어 쌈밥, 연어 고로케, 연어 타고 등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 연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레시피 개발을 위해 2012년 전담 부서인 푸드시너지팀도 신설했다. 이 팀은 4명의 연구원과 6명의 전문 셰프 등 10명으로 이뤄져 신제품 및 리뉴얼 제품 맛 검증은 물론 각종 레시피 연구개발(R&D)을 담당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파상 공세에 동원F&B도 온라인 요리대회와 대형마트와 함께 진행하는 '쿠킹클래스' 개최 등 맞불작전에 나섰다. 지난 3월 온라인상에서 '붉은 통살 동원연어 요리대회'를 열고 연어 낫또 된장 비빔밥, 시금치 연어 플랫 브래드 등 5개 레시피를 선정했다. 또 지난 4월 20일까지 이마트와 손잡고 쿠킹 클래스를 연 데 이어 5~6월에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AK플라자 등과 '건강하고 맛있는 도시락 만들기'란 주제 아래 40회에 걸쳐 여름학기 요리교실을 개최한다.
동원F&B 관계자는 "붉은 통살 동원연어 온라인 요리대회에는 120여 개의 레시피가 심사에 올랐다"며 "최고의 레시피로 뽑힌 5개 요리는 현재 온라인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1년부터 동원F&B 블로그 '우리들의 건강한 이야기'에서 다양한 레시피를 선보이고 있다"며 "지금까지 알린 레시피만 400여 건으로 제품 홍보는 물론 고객과의 소통에 주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디슈머 열풍의 원조 격인 라면 업계도 레시피 마케팅이 한창이다. 업계 1위인 농심은 2008년부터 매년 영양과 웰빙에 초점을 맞춘 '건강한 식단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앞서 2001년부터 홈페이지 내 '누늘푸들'이란 레시피 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어 라면을 활용한 각종 레시피를 공개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국민 요리로 부상한 '짜파구리'도 누들푸들 상에 올라온 한 소비자 레시피 제안에서 탄생했다"며 "누들푸들에 등록된 레시피만 2,220여개나 된다"고 강조했다.
경쟁회사인 팔도도 오는 7월14일까지 진행하는 '팔도비빔면 레시피 월드컵'을 활용한 레시피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한 지난해 동원F&B와 손잡고 마케팅 활동에 나선데 이어 올해도 대형마트와 공동 판매 행사를 계획 중이다. 2012년 오픈한 블로그 '온종일 맛있는 생각뿐'에서 94개 레시피를 공개하고 있으며, 최근 만두비빔면과 골빔면(골뱅이+비빔면) 등 모디슈머 레시피를 활용한 광고도 시작했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2조원을 넘어선 라면 시장 성장은 모디슈머의 영향이 컸다"며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짜파구리'가 인기를 끌면서 짜파게티와 너구리 판매율이 30% 이상 급증한 게 대표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각종 레시피를 알리는 활동은 기업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는 동시에 고객과 요리 재미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확실한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잡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