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그는 왕이 됐다. 노래의 왕. 1980년대에는 가수왕 타이틀을 휩쓸었다. 2003년 8월 한 음악평론가가 '가왕(歌王)'이라 칭한 후 이 수식어는 한번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조선 말기인 18세기 동편제를 창시했던 명창 송흥록 선생 이후 200년간 사라졌던 가왕의 신화는 이렇게 그를 통해 부활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 누구도 예상 못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등장했다.
△ "기도하는~" "꺄악~~."1980년대 TV를 켜기만 하면 나왔던 이 노래와 괴성.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조용필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는 기억음이다. 1975년 그룹 활동을 접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솔로로 데뷔한 그는 1979년 1집 음반 타이틀곡인 '창밖의 여자'부터 '단발머리'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등 헤아리기조차 힘들 만큼 많은 히트곡을 쏟아냈다. 166㎝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온다고는 믿기 힘든 폭발적인 가창력과 팔색조를 닮은 음색, 민요부터 트로트, 프로그레시브록까지 넘나드는 실험정신은 '오빠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든 여성만 매료시킨 게 아니었다. 군사정권 속에서 숨죽여 지내야 했던 수많은 대중들에게 조용필은 오아시스에 다름 아니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가왕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19집 앨범에 수록된 신곡 '바운스'가 발표되자마자 모든 음원 차트에서 싸이의 '젠틀맨'과 1,2위를 다투는 형세다. 대중음악 평론가처럼 분석하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톡톡 튀는 리듬과 가사는 4집 앨범의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와는 또 다른 경쾌함과 신선함을 주는 것 같다. 빅뱅, 샤이니와 같은 아이돌 멤버들도 "이렇게 좋을 수가" "말이 필요 없지요. 한번 들어보세요."라며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조용필은 올해로 만 63세다. 가요계가 10대, 20대 아이돌들로 넘쳐나는 풍토에서 그를 흘러가는 원로가수로만 여겼었다. 하지만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웠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통하려는 그에게 세월과 세대 간의 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가왕은 살아 있다. 고맙고 기쁘다.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