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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내용은 심플하다.
열두 살부터 사창가를 출입하면서 순수한 사랑이라고는 해보지 못한 칼럼니스트 엘 사비오(에밀리오 에체바리아 분)가 90번째 생일을 앞두고 처녀와의 하룻밤을 지내다 순수한 사랑에 빠져든다는 스토리다.
어떻게 보면 은교의 데칼코마니(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기법)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원작자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의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을 떠올리면 영화가 전해주는 단순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지, 아니면 속 깊은 작가와 감독의 철학적 메시지에 천착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어쨌거나 이 영화의 원작 소설'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Memories of My Melancholy Whores)은 지난 2004년 출간 당시 책이 나오기 전부터 교정본을 복사한 해적판이 나돌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스페인어 국가들에서는 당시 화제작이었던 '다빈치코드'를 제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는 두 가지 잣대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그저 주책없는 오입쟁이 늙은이의 노추에 대한 조롱 아니면,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의 삶에 대한 성찰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대체로 후자쪽에 심증이 간다.
영화의 첫 대목에 나오는 사비오의 독백도 그 같은 정황을 뒷받침 한다.
"아흔 살 생일에 풋풋한 처녀와의 밤을 내게 선물하고 싶다. 그 것은 날 짓누르던 의식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라는 대사는 죽음이 멀지 않은 노인이 아직 남은 삶을 확인하려는 치열한 몸부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비오와 하룻밤을 보내면 한 달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을 팔러 온 델가디나(파올로 메디나 분)는 긴장한 나머지 그냥 잠에 빠져들고, 소기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사비오는 순수한 사랑에 눈을 뜬다.
사비오는 이후 신문 지면을 통해 델가디나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그 것을 읽는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호감을 느낀다.
캐츠의 창녀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하늘로 올라가는 내용이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도 부드러운 목넘김이 힘든 건 사실이다. 많은 나라에서 개봉을 결정하지 못해 덴마크와 러시아에서 막이 올랐을 뿐이다. 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