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흑27의 자리는 이세돌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이영구가 백26으로 27의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는데 이영구는 그곳을 선점하지 않았다. 목진석9단은 그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서봉수9단의 견해는 달랐다. "바둑이라는 게 참 묘해요. 프로들은 언제나 생각을 하지. 지금이 결정적인 찬스가 아닐까. 바둑 한판 두면서 그런 생각을 수십 번을 하지. 특히 상대방이 마땅히 두어야 할 곳을 일부러 두지 않았을 때는 아주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지. 하지만 이영구는 낙관주의자란 말이야. 구태여 그곳을 선점하지 않고 넘어가면서 스스로를 타이르는 거야. 상대가 애초에 그곳을 두었다고 치자. 이렇게 생각하면 속이 편하지. 특히 속기바둑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시간관리에도 좋아요."(서봉수) 흑29는 이세돌류. 그는 언제나 대마의 공격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영구는 흑29의 공격을 반기는 눈치였다. 백30과 32의 노타임. 흑의 세력을 거의 지워버리는 즐거운 행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흑33 역시 이세돌다운 수였다. 그가 주문하고 있는 것은 참고도1의 백1로 꼬부려 달라는 것이다. 그때 흑2로 백대마 전체의 사활을 위협할 예정이다. 그것을 간파한 이영구는 백34로 붙여 안정을 서둘렀다. 흑37의 응수타진은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참고도2의 백1로 받으면 흑2로 막는 수가 선수로 활용된다. 물론 백이 A에 두면 선수는 백이 되찾게 되겠지만 이 장면에서 백이 A에 두는 것은 부분적으로 굉장한 악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