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아타<br>세계 주요 도시 동양적 정서로 촬영<br>'8시간 노출' 사람은 사라지고 도시만 남아<br>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참여작가 선정
| 온에어시리즈-파리(위) / 인달라시리즈-워싱턴 D.C(아래 왼쪽) / 온에어시리즈-뉴욕(아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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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느림의 미학… 세계를 다시 창조한다
사진작가 김아타세계 주요 도시 동양적 정서로 촬영'8시간 노출' 사람은 사라지고 도시만 남아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참여작가 선정
조상인 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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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시리즈-파리(위) / 인달라시리즈-워싱턴 D.C(아래 왼쪽) / 온에어시리즈-뉴욕(아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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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단지 어두운 잿빛으로만 가득 찬 도시. 사진작가 김아타(53ㆍ사진)의 작업실에 걸린 사진은 세계 주요 도시의 정체성을 표현한 최근작 '인달라 연작' 중 하나인 델리 편이다. 2007년에 이어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그는 델리를 비롯한 워싱턴ㆍ뉴욕ㆍ도쿄ㆍ모스크바ㆍ프라하ㆍ베를린ㆍ파리ㆍ로마를 두루 다니면서 도시의 풍경을 촬영했다.
"각각의 도시를 표현할 수 있는 사진 만(萬) 장을 찍었고 이를 모두 합쳤습니다. 1만의 숫자적 개념보다는 많고 가득 차 있다는 만(滿)의 의미로 봐 주셨으면 좋겠는데…."
삼라만상(森羅萬象)이란 표현이 제격이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 달리는 자동차와 위용을 뽐내는 건물까지 도시의 분주함과 고단함마저 1만 개 층위 속에 한줌 재 같이 회색 빛으로 녹아들었다. 지난해 로댕갤러리 전시장에 걸렸을 당시 관객들이 "작품은 어디 있느냐"는 원성어린(?) 질문을 자아냈던 바로 그 작품이다.
뜻밖에도 이 사진은 김아타에게 기쁨을 안겼다. 오는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제 53회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베니스 시내 팔라초 제노비오(Palazzo Zenobio)에서 열리는 특별전 참여작가로 선정되는 데 이 작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장 오랜 역사와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비엔날레인데다 특별전은 각국 대표 작가들이 경합하는 '별들의 전쟁'인 만큼 비중이 더 크다.
이번 특별전은 베니스의 아르테커뮤니케이션과 경남도립미술관의 기획으로 추진됐고 비엔날레 사무국의 심의를 거치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렸다. 한국작가가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선정된 것은 2007년 이우환 화백에 이어 두 번째지만 일본에서 활동중인 이 화백의 전시를 제안한 주체가 한국이 아니었기에 대표성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해당부처(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추천서를 기본으로 국가가 인정한 작가만이 특별전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건 개인의 영예를 넘어 작품관과 국가지원, 그리고 경제적 뒷받침의 3박자가 갖춰져야 가능한 국가간 경합이었던 거죠. 하여튼 작품 심사에서 서양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특히 사로잡은 게 바로 그 회색빛 인달라 연작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랬다. 그의 저력은 동양적 정신성에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부터 나와 당신을 아우르며 지은 자신의 이름 '아타(我他)'까지, 그는 예술가를 넘어 철학자에 가깝다.
"인간의 일생을 두고 지구를 본다면 지금은 철없는 사춘기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중 서양 주도의 현대미술은 질풍노도의 한 순간이었던거죠. 특히 미국은 911사건 이후 인문학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있는 중인데요, 미술의 경우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한 서양의 현대미술계는 틀에 갇힌 자신들의 한계를 반성하는 중입니다. 지난 몇 년간 중국 현대미술이 그 대안으로 주목받은 것도 같은 맥락인거죠"
그는 최근 5년여 동안 호황을 누린 중국 미술을 지적하며 동양사상이 밴 정수(精髓)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설파했다.
"그간의 중국미술은 아시아 특유의 철학적 사고가 부족한 채 이미지만 범람했어요. 동양사상의 핵심이 곧 나올 겁니다. 이미지(象)보다 느릴지라도 그 진수는 사상(思想)입니다. 일례로 제가 만난 한 중국작가는 10년째 돌을 갈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걸까요? 앞으로도 10~15년 이상 동양미술이 주목 받을 것이고 동양의 정신(soul)을 갖춘 그것은 서양보다 더 오래갈 겁니다"
느리게 서서히 드러나는 게 동양의 저력이라는 그의 말이다. 빠른 것은 사라지고 느린 것이 분명하게 남는 작품 '온에어 시리즈'에 그 사상이 함축돼 있다. 8시간 장시간 노출로 뉴욕 같은 대도시를 촬영했더니 바삐 움직이던 모든 것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굳건하게 한자리에 머물던 빌딩과 간판과 가로등은 선명히 남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가진 동양성을 강조하며 열정을 담아 말을 이었다. "현대미술의 대안과 미래를 찾기 위해 애쓰는 서양미술계의 대표적인 행사가 뉴욕에서는 매년 '아시아 현대미술 주간(Asia Contemporary Art Weekㆍ이하 ACAW)'입니다. 아시아 미술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자리인데 올해는 제가 작가와의 대화에서 강연자로 초청받았어요.
동양의 소울(Soul)에 대한 담론을 펼쳐보일 생각입니다. 이제 미술에 대한 서양의 정의에 더 이상 휩쓸리지 맙시다. 그들의 판에 뛰어들어가 우리의 정신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확신에 찬 목소리는 뉴욕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유럽까지 뒤흔들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케 한다. 다음달에는 아일랜드 더독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고 4월에는 독일 출판사 '하체칸츠'가 그의 사진집 2종을 발간한다.
이어 5월 11~18일 뉴욕으로 가 ACAW 강연회에 참여하고 곧장 중국 광저우 사진 비엔날레에 참가한다. 그리고 6월엔 베니스로 간다. 느림의 미학으로 세계 미술 지도를 다시 그리는중인 그의 발걸음은 어느 누구보다 숨가쁘다.
김아타는 누구
1956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고정관념을 뒤집는 '인간문화재' '해체시리즈' 등 사진작품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상이군인, 스님 등을 발가벗겨 박물관용 유리상자에 넣고 찍은 '박물관 시리즈'로 인간 존재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파란을 일으켰다. 2002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아시아 작가 중 처음으로 미국 뉴욕의 사진전문 미술관인 국제사진센터(ICP)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 옷을 벗은 13명의 인물이 자리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고 이를 겹쳐놓은 '최후의 만찬' (5ⅹ25m)으로 뉴요커들을 놀라게 했다. 이는 동양적 사상으로 작업하는 그가 기독교적 서양 사상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빌 게이츠가 한 눈에 반해 마이크로소프트 아트컬렉션이 그의 작품을 구입했고 휴스턴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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