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째 0%대 소비자 물가상승률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경제구조처럼 수출 제조업 위주인 대만이 10여년 전 디플레이션에 빠진 적이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994년 4.1%에 달했던 대만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0년대 후반 들어 점차 낮아지더니 1999년에는 0.2%까지 떨어졌다. 물가상승률이 점차 둔화하는 디스인플레이션을 겪다 결국 3년 뒤 디플레이션에 돌입했다. 2002년과 200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0.2%, -0.3%를 기록했다. 2년간 공식적인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이다.
발단은 제조업 공동화였다. 얼어붙어 있던 대만과 중국 관계가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풀리면서 대만 공장이 저임금의 중국으로 대거 이전하기 시작했다. 대만의 해외 직접투자액(FDI)은 1990년대 연평균 25%씩 급증했고 이 중 절반은 중국으로 향했다. 공장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니 대만의 고용시장은 얼어붙었다.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56%에 달했으나 2000년 45%로 깎였다. 일자리가 줄자 소비자의 지갑도 얇아졌다. 전문가들은 총수요 감소가 물가 하락 압력을 가중시켰다고 분석한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는 대만 경제를 수렁으로 몰고 갔다. IT 버블 붕괴는 디플레이션 진입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대만의 국내총생산(GDP)에서 IT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0%로 미국(7.3%)보다 높았다. 경제의 중추인 IT 부문이 흔들리자 실물 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공철 한국은행 국제종합팀장은 "제조업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등 부정적 영향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월급도 쪼그라들었다. 한은의 최근 인플레이션보고서를 보면 2001~2002년 제조업 연평균 명목임금 상승률은 -0.6%를 기록했다.
대만은 2004년 1.6%의 물가상승률로 디플레이션에서 일단 탈출했다. IT 산업이 회복되고 신흥국 고속성장이 시작되며 유가가 반등한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물가상승률이 0%대로 둔화해 다시 한번 디스인플레이션의 시련을 겪고 있다. 대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0.6%에 불과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만에서도 최근 다시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한은은 대만 사례에 비춰봤을 때 우리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대만만큼 제조업 공동화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데다 저물가상황이 수요 부진이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공장의 해외 이전도 활발한 편이지만 우리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6.3%에서 2013년 16.7%로 오히려 증가했고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도 10%대 중후반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디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한은과 정부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