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제철업 반대 본심은 무엇인가(사설)

현대그룹의 제철업진출이 끝내 좌절됐다. 현대그룹의 제철업 진출과 관련해 정부는 경제력의 집중, 과잉투자, 환경피해, 임금상승 등의 이유를 들어 불허한다는 입장을 14일 공식 표명했고 다음날 급작스레 열린 공업발전심의회에서 이를 「추인」받았다.선진국 진입을 위해 개방화 자율화 규제완화를 정책지표로 내건 정부의 결정치고는 너무 앞뒤가 안맞는다. 형평과 경쟁의 논리에도 맞지않고 절차상으로도 억지가 많다. 이 논란을 지켜보며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곱씹게된다. 자유시장 경제원리는 기업가의 사업의욕과 창의력을 북돋우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시장 진입과 퇴출은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기업활동이 공정한 경쟁아래 이뤄질수 있도록 룰을 만들어 집행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한다. 정부에는 물론 국가적으로 산업의 균형발전을 도모해야할 책무가 있다. 이를 달성하기위해 때에 따라서는 사전적이고 예방적인 기능도 해야한다. 재난방지나 국가경제에 해악이되는 사업을 막는 것이 그런 범주에 속한다. ○원칙이 없는 진입규제 모든 기업활동은 원칙적으로 기업이 알아서 할일이다. 제철업 진출여부는 법상으로도 정부의 허가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사업을 사전적 예방적으로 봉쇄해야할 사업으로 규정한 정부처사는 언뜻 이해가 되지않는다. 정부의 봉쇄논리가 무리하고 자의적이다. 찬반의 논리는 팽팽하고 오히려 일부 분야에서는 찬성쪽의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양쪽 논리에대한 치밀한 검증을 거치지도 않은 채 원천봉쇄하려는 정부의 처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력집중문제부터 보자. 현대그룹의 제철산업진출은 정부의 우려대로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는 포철과 일부가공업체들의 독과점체제로 돼있는 철강산업을 경쟁체제로 바꾸는 효과와 상대평가돼야한다. 문제는 자동차등 철강수요가 많은 현대그룹이 기초소재와 제조회사간의 수직계열화로 불공정거래를 야기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또 정부당국자가 밝혔듯이 계열사정리가 없는 문어발식 신규진출은 막아야한다. 누구보다 현대그룹은 이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할일은 현행의 법과 제도를 통해 현대그룹의 룰의 준수여부를 감시하는 일이다. ○일관성 형평성도 고무줄 둘째로 공급과잉여부에 대한 논란이다. 이 문제에선 찬반이 명백히 갈린다.정부는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철강소비가 감소해 현대그룹이 본격적으로 생산단계에 들어갈 2005년께는 수요가 정체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후발국가들이 설비확충에 나서 수출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에 반해 찬성측은 2000년까지는 6.84%, 2005년까지는 5.5%로 철강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같은 양측의 논쟁은 보다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봉쇄」 절차도 마음대로 환경문제야 말로 정부는 사전 사후적인 감독에 철저를 기하면 해결될수 있는 사안이고, 인건비상승 우려도 오히려 산업공동화 방지와 신규고용창출이라는 면에서 국익에 보탬이 될수있는 일로 정부의 반대논리는 꼬투리잡기식이다. 형평성의 문제는 현재 자동차업계가 처해 있는 상황에 비춰 과잉투자 성격이 짙은 승용차사업을 94년 삼성에 허용한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박재윤 통산부장관은 『더이상 민간기업에 대한 신규진입 규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바도 있어 정책의 불신을 증폭시킨다. 특히 절차상의 문제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리 그 자체이다. 먼저 반대논리가 주무부처인 통산부가 아닌 청와대와 재경원쪽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없다. 당초 통산부는 『사업계획서가 제출되면 공발심의 토의에 부쳐 그 결론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마디 설명도 없이 표변한 통산부가 사업계획서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러리성 공발심을 열어 반대쪽으로 결론을 유도한 것은 명백히 앞뒤가 뒤바뀐 절차다. 물론 현대그룹측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기도 전에 부지선정에 나서 여론몰이 식으로 정부를 압박하려한 점은 있으나 이것이 정부의 반대논리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면 이성적인 대응이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무리를 무릅쓰고 정책의 일관성을 깨면서까지 현대그룹의 제철업 진출을 봉쇄한데 대해 일각에선 지난 대선때의 「괘씸죄」가 아직도 유효한게 아니냐, 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의 본심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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