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택시운전을 한다더라…』
미국·독일·일본 등지를 여행하면서 어쩌다 듣던 얘기였다. 직업에 따로 귀천이 없고, 저 좋아 하는 일이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생각했었으나, 그래도 어쩐지 우리 정서로는 수긍하기 어려웠던 일이었다.
요즈음 누구라도 외국유학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박사가 될 수 있는 시절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서울에서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서 10년씩, 때로는 그 이상 애쓰다가 끝내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얘기가 종종 화제가 되기도 한다. 좌절한 본인도 본인이거니와 그 부모들 심정에 위로할 말을 못찾기도 했다. 『박사가 간단한 것은 아니구나』싶으면서도 다른 한편 이름 있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게 된다.
6.25전쟁때 고생하던 세대로서는 「외국유학과 박사학위」는 꿈같은 일이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신문에 사진과 기사가 실리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귀국하면 문자 그대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다. 권세가의 사윗감 1순위로 꼽혔다. 자기가 대학을 골라잡아 교수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부에는 장·차관급, 재벌기업에서는 경쟁적으로 모셔가던 세월이었다. 특히 학벌에 약한 군사정부때는 특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너도나도 박사학위를 따야겠다고 외국에 나갔는지 모른다. 너도나도 자식을 박사시켜 보겠다고 부모들이 온갖 무리를 다했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연어떼들 고향산천 찾아오듯 대량 탄생된 박사들이 속속 귀국하게 되었다. 이들이 우리경제발전에 큰 에너지가 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넘치고 넘치는 박사들이 일자리를 놓고 경합이 붙기 시작하면서 박사들의 시세도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재벌기업의 경우 재벌총수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박사들의 직급이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재벌 자체에서 유학보낸 사원들이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니 별 수 없는 것이었다. 사장 부사장급으로 놀던 사람들이 최근엔 과장급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박사도 박사 나름이다. 이제는 어느 대학 어느 교수밑에서 무얼 전공했느냐를 하나하나 따진다.
IMF사태후 재벌기업의 박사들이 찬밥신세가 되어간다는 소식이다. 연구개발 투자와 프로젝트를 대폭 줄이고 있고 기업마다 「비용절감 최우선」을 내세우고 있어서 고임금으로 버거운 박사들도 명퇴대상으로 밀린다고 한다. 취직 못한 박사들이 가는 곳마다 줄서서 대기하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도 신참 박사들이 밀려온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택시운전하는 박사들이 안나오리라는 보장을 아무도 할 수 없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