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유엔데이

중국 베이징(北京) 북동쪽 한국인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의 아파트촌에는 매일 아침7~8시쯤이면 학생들을 실어 나르는 통학 버스들로 북적댄다. 24일 아침에도 통학 버스들이 줄지어 선 것은 평소와 다름 없었으나 학생들은 교복 대신 한복이나 ‘붉은 악마’ 셔츠 차림이었다. 올해 61번째 맞는 ‘국제연합창립기념일(유엔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기 나라를 상징하는 옷을 입고 등교해달라는 국제 학교들의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게 하려는 교육적인 배려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공휴일이었던 유엔데이를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은 접어두더라도 유엔데이인 10월24일은 대한민국과 인연이 각별하다. 유엔은 지난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즉각 참전해 한반도에는 불안하나마 평화를 찾아줬고 우리는 50년부터 75년까지 ‘유엔데이’를 국정공휴일로 정해 이를 기념했다. 이어 남과 북은 91년 9월17일 각각 160번째와 161번째 회원국으로 나란히 회원국이 되면서 유엔은 우리와 더 가까워졌다. 여기에다 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선임됨으로써 한국과 유엔의 인연은 특별해졌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은 평화를 지키는 우리의 역량이 커졌다는 점에서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핵실험 도발은 한반도 평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ㆍ일본의 무력제재 주장과 북측의 무력대응 엄포가 충돌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워졌다. 그런데도 23일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를 하러온 몇몇 국회의원들은 한가한 말씀(?)만 남기고 돌아갔다.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은 “베이징의 북한 식당이 한해 벌어들이는 돈이 금강산 관광수입을 웃돈다는 말이 있는데 대책을 세우라”는 엉뚱한 질의로 좌중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이해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의원들의 질의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하중 대사를 거들어 “계속 그 기조를 유지하라”며 분위기를 ‘하나마나 국감’으로 몰아갔다.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을 결사적으로 막는 동시에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우리의 지상과제를 진심으로 바라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의원으로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중차대한 시기에 정치인들이 이 지경이니 유엔데이를 맞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동심에 부끄러워진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베이징에서 맞는 유엔데이는 날씨마저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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