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걷기 운동 도중 잠시 쉬어가는 벤치. 언뜻 보면 나무로 만든 것 같은데 만져보면 플라스틱처럼 단단한 것들이 많다. 따뜻한 질감을 가진 나무와 비바람에 강한 플라스틱의 장점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신소재(WPC)다.
이 기술 덕분에 최근에는 강변 카페의 야외 바닥이나 도로변의 가드레일, 철도 밑 침목에도 나무가 아닌 나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나무에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을 섞어 뒤틀림 없는 주방용 도마를 만들거나 천 년 동안 물속에 잠겨 있어 선체가 훼손된 고대의 목선을 복원하는 데도 이용된다.
현대·기아차, 아우디, BMW 등과 같은 선진 자동차업체는 종전에 금속으로 만들던 차량의 내외장 부품을 빠르게 고성능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고 있다. 자동차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연비가 향상되는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경우 금속처럼 단단하면서도 중량은 적어 자동차 경량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강도가 필요한 곳은 금속으로, 형상이 복잡하거나 정교한 공정이 필요한 곳은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처럼 금속과 플라스틱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하나처럼 접합시키는 금속-플라스틱 하이브리드 기술도 어려운 것이지만 최근에는 아예 금속을 배제하기도 한다.
유리나 탄소섬유를 플라스틱과 섞으면 테펙스(TEPEX)라고 불리는 섬유강화 복합소재가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시트에 고강도 폴리아마이드 플라스틱을 결합해 부품의 무게를 절반가량 줄이는 이른바 플라스틱-플라스틱 하이브리드 기술로까지 진전된 것이다.
도전적인 융복합 상상력 키워야
이 소재는 가열하면 어떤 모양으로도 변형이 가능하며 금속과 같은 강도를 지녀 '금속을 대체하는 플라스틱'으로 불린다.
나무·금속·유리·플라스틱 등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물건들이다. 이처럼 평범한 재료들이 결합해 첨단 복합소재로 재탄생하는 플라스틱의 무한변신은 우리에게 융·복합적 사고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평범하게 여겼던 물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다양하게 결합해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무엇보다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익숙한 사물을 익숙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타성이 아니라 낯선 방식이지만 합치고 나누고 변화시켜보려는 도전 정신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정말로 가치 있고 새로운 사물을 잉태할 수 있다.
애플의 신화를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크리에이티브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즉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 다시 말해 유(有)와 유(有)를 결합해 새로움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창업대국으로 주목받는 이스라엘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후츠파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후츠파 정신이란 '담대함'이나 '저돌적'을 뜻하는 히브리어로 형식의 파괴, 상상력과 융합, 끈질김 등을 근간으로 한다. 창의력을 존중하는 문화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이스라엘은 인구 만 명당 과학기술자 수가 140명으로 가장 높으며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20%가 넘는 수상자를 배출해냈다.
평범한 플라스틱이 금속이나 유리·나무 그리고 또 다른 플라스틱과 만나 전혀 새로운 소재로 탄생하는 것처럼 창조와 혁신은 도전적인 융·복합의 상상력에서 나올 수 있다.
평범한 재료 합한 첨단소재 각광
여기에 상상을 현실화하는 과학기술이 뒷받침되고 상업화가 가능하도록 산업 간, 산학 간 협력체계가 구축되며 기업인과 발명가들이 신 나게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도 정비된다면 우리 경제는 보다 발전된 새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
최근 우리 경제가 '신(新)샌드위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가 심심찮게 들린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 성장동력인 제조업이 가격에서는 일본에 밀리고 중국과의 기술격차는 점차 줄어들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잠재력을 되살리기 위해 이번 정부에서 대표적인 국정과제로 삼은 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융·복합의 상상력이야말로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 나아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는 첫 단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