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10월 20일] 시장(市場)의 우상

학창 시절 철학시간에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인류가 오류를 범하는 우상(偶像)론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시장(市場)의 우상'이다. 부적당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 없이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인류 간 소통의 오류가 생긴다는 뜻이다. 요즘 중국이 외치고 있는 정치개혁 목소리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서방 등 외부세계인식 간의 간극을 보노라면 시장의 우상이 떠오른다. 공산당의 연중 최대정치행사인 제17기 5중전회를 앞두고 원자바오 중국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민주ㆍ언론의 자유, 인민을 위한 통치 등을 울부짖으면서 이번에는 무엇인가 정치개혁이 실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내외부의 희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폐막일인 지난 18일 발표된 공산당의 공동성명을 보노라면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라고는 읽히지 않았다. 10여쪽에 이르는 장문의 성명에서 정치개혁이라는 단어는 한 번 나왔고 그것도 "정치체제 개혁을 적극적이고 착실하게 추진해 상부구조가 경제기초 발전변화에 더 잘 적응하게 한다"는 매우 모호한 표현이었다. 18일 중국 정권의 차기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된 시진핑 부주석은 틈만 나면 "국가의 권력은 인민에서 나온다"며 통치자들이 백성을 위해 섬기는 자세로 임할 것을 강조한다. 원 총리는 최근 "경제 현대화에는 반드시 정치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개도국이든 선진국이든 모든 국가에서 보장돼야 한다. 국민의 민주와 자유에 대한 요구는 막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중국이 정치개혁 주장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치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장쩌민 전 주석 때인 1990년대 후반에는 정부조직 개혁을 단행했고 후진타오 집권 초반기인 2000년대 초반에는 정부 서비스 부문 개혁을 단행했다. 외부세계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ㆍ인권ㆍ언론개혁은 아니었다. 중국정부는 서방식 민주주의를 강요하지 말라고 하며 최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류샤오보는 분열주의자이며 범법자로 매도했다. 하지만 중국식의 민주와 언론자유가 무엇인지 외부세계는 물론 중국 내 지식인들은 궁금해하고 있다. 좋게 해석하면 공산당 일당 독재하에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중국식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또 베이컨이 말했듯 중국을 몸소 경험하고 느끼지 못한 얼치기 서구인들이 사정도 모르면서 자기들만의 민주주의 이식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공산당의 전 고위간부와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류샤오보의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언론자유 등 정치개혁을 외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갈수록 커지는 빈부ㆍ계층ㆍ지역 간 격차 등 내부모순을 볼 때 중국 정부가 언제까지고 개혁론자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시장의 우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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