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림칼럼] 국가표준 정비와 국제경쟁력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전국 순행에 나섰다. 그런데 통일 전의 국경선을 넘을 때마다 마차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통일 전 일곱 개 나라들은 이웃 나라가 침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차 바퀴 사이의 간격을 각각 다르게 했고 이로 인해서 바퀴가 지나가는 부분이 나라마다 다르게 움푹 파여 있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먼저 중국 전역의 도량형을 통일시키는 작업을 했다. 즉, 길이를 재는 표준자를 제작해 보급한 후 마차 바퀴 간격을 그 자를 기준으로 일정 규격에 맞도록 만들게 했던 것이다. 각기 달랐던 바퀴 간격을 일정하게 통일시키는 작업을 오늘날의 용어로 '표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표준자를 제작해 각 지방에 보급해서 표준화가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국가표준체계'라고 할 수 있겠다.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한 국가의 통치 차원에서 국가 전체적으로 일관된 도량형 단위가 통용되도록 하는 것으로 국가표준체계는 충분했었다. 그러나 첨단과학과 산업이 발달하고 글로벌 경쟁 시대인 오늘날에 있어서 표준은 더욱 복잡하고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다. 우선 첨단과학 및 산업의 발전으로 측정해야 하는 것은 길이ㆍ부피ㆍ무게를 뜻하는 도량형 이외에도 전자파, 온도, 속도, 재료의 강도 등 수백 종이 넘는다. 최근에는 환경, 국민의 보건 및 안전과 관련해 수많은 새로운 표준과 규격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표준 및 규격들은 국가별, 세계 권역별로 다르게 발달돼왔다. 이렇게 다른 표준 및 규격들은 국가간 무역의 장벽으로 대두됐다. 그래서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무역에서의 기술장벽(TBT)을 제거할 목적으로 TBT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또한 같은 목적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시험소인정협력기구(ILAC) 등의 국제 표준 기구들은 국가간에 시험평가 기관을 상호 인정해 한 나라에서 측정한 결과를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해주는 ‘One Standard, One Test, Accepted Everywhere’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표준화 추세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부 부처에서조차 표준화가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산품 규격으로는 산업자원부가 관장하는 KS와 정보통신부가 관장하는 KICS가 있다. 이외에도 건설교통부ㆍ환경부ㆍ보건복지부ㆍ행정자치부 등 전체적으로는 19개 부처가 86개 법령에 근거해 1만6,000여종의 정부규격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격들 중 상당 부분이 서로 중복되고 또 국제표준과도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 127조2항에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 99년도에는 국가표준기본법을 제정하면서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표준심의회를 신설했다. 그러나 국가표준심의회는 그 이후 부처간의 심한 이견으로 한번도 열린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정부가 국가표준체계 재정비를 포함하는 제2차 국가표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표준과 관련한 관리 체계를 단순화시키고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전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체계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해 적어도 국가 인프라에서는 남한과 북한이 표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상호 협력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다. 표준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할 만큼 표준은 이제 국가경쟁력의 척도로 부상했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국제무대에서 표준으로 채택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국내 표준체계의 재정비와 함께 국제표준화기구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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