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저축銀 부실 막자" 정부, 예보기금 공동계정 신설 논란

은행·보험업계 "남의 부실을 왜 내가…" 강력 반발<br>국회도 "업계 설득부터" 한발 빼…입법 진통 예고



정부가 저축은행의 부실을 차단하기 위해 추진 중인 예금보험기금 내 공동계정 신설이 은행ㆍ보험업계 등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예금보험기금 내 저축은행 계정의 적자확대를 같은 기금 내 은행 계정이나 보험기금에서 돈을 내 '공동계정'을 신설, 해소해나갈 계획이다. 지난달 24일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현행 해당 업권에만 쓸 수 있고 타 업권에 대여해주는 것만 가능하도록 쌓아놓은 예금보험료 적립액 중 50%와 앞으로 낼 보험료의 절반을 공동계정으로 옮겨 특정 업권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을 때 금융권이 공동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은행이나 보험사에서 지금까지 낸 예금보험료 중 절반, 그리고 앞으로 낼 보험료의 절반을 공동계정으로 옮겨 저축은행 계정의 적자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ㆍ보험업계는 저축은행의 부실을 은행ㆍ보험업계가 쌓은 기금으로 메우려 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공동계정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어서 입법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 초 공청회를 비롯해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 4월 시행을 목표로 추진할 예정이다. 한편 의원입법 추진을 통해 정부에 힘을 실어주려던 국회 정무위원회가 은행ㆍ보험업계의 강력한 반대를 의식하는 듯 관련 업계의 설득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한발 물러서 귀추가 주목된다. ◇은행ㆍ보험업계 "남의 부실을 왜 우리가 부담하느냐" 반발=은행ㆍ보험업계는 정부의 공동계정 도입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을 왜 자신들이 쌓은 기금으로 메워야 하냐는 불만이다. 저축은행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나 처방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계정 신설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부실만 처리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예보법에는 은행ㆍ보험 등 권역별 목표기금을 만들어 목표치를 채우면 더 이상 기금을 쌓지 않도록 해놓았는데 공동계정 신설은 이 같은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공동계정 신설은 필요에 따라 권역별로 부실이 커지면 언제든 가져다 쓰겠다는 것인데 그동안 열심히 쌓은 은행ㆍ보험업계보다 사실상 부실인 큰 저축은행 업계에만 혜택이 주어지는 특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공동계정 신설로 보험료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형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동계정 신설은 저축은행 계정의 지급여력 부족이 금융시스템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게 목적이지만 보험료 부담을 가중시키고 부실한 특정 업권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등 비용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불가피한 선택"=그러나 공동계정 신설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저축은행의 부실 문제는 물론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자금이 필요한데 예보기금 내 저축은행 계정이 이미 적자인데다 자칫 기금 전체로 부실이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공동계정 신설로 마련한 재원을 활용해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최근 대통령에게 내년 업무보고도 마친 상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공동계정 도입은 더 이상 공적자금에 의지하지 않고 금융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궁여지책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는 공동계정 신설이 현행법 취지를 역행하거나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금융업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예보기금으로 적립한 돈은 일단 비용처리된 만큼 기금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금융시장의 안전망 역할이라는 기금의 본래 목적에 따라 쓰이면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기금을 계정별로 별도 관리한 것은 회계상 편의를 위한 조치로 공동계정 신설은 예보법 기본정신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예보의 한 관계자는 "공동계정 도입은 우선적으로 저축은행 부실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비쳐질 수 있으나 금융권에 갑작스런 사태가 발생할 때 은행ㆍ보험업계 등 나머지 업권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은행ㆍ보험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의원입법을 추진하던 국회 정무위도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공동계정 신설에 있어 금융당국이 강력 반발하는 관련 업계를 우선적으로 설득해야 입법추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정무위의 한 관계자는 "예상보다 은행ㆍ보험업계의 반발이 강력해 현재로서는 이들 금융권에 대한 설득 없이 일반적으로 추진하기 힘들 상황이 됐다"면서 "입법추진을 위해 금융당국이 공동계정 신설에 대한 관련 업계의 부감이 없어지도록 설득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다른 전문가는 "저축은행 부실이 지금처럼 확대된 데는 정부의 감독책임도 있는 만큼 업계의 부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정부의 구조조정기금도 과감히 투입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금보험기금=예금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일정 요율의 보험료를 납입받아 적립뒀다가 경영부실 등으로 금융기관이 예금을 상환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신 지급하기 위해 마련된 기금. 우리나라는 지난 1996년 신설된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가 은행ㆍ보험ㆍ저축은행 등 권역별로 보험료를 받아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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