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소속 변호사의 이해상충이 있더라도, 해당 변호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나머지 소속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도록 한 것은 사실상 법무법인의 쌍방대리를 허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실반영”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변호사의 쌍방대리 금지는 현행법에 나와 있고, 기본적인 직무라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어떤 내용 포함됐나= 개정안에는 로펌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한쪽 사건 당사자가 의뢰한 사건을 담당한 구성원(파트너) 변호사가 전체 구성원 변호사의 절반이 안되고, 사건을 의뢰인에게 불리하게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사유가 인정될 경우 상대방측 당사자가 의뢰하는 다른 사건을 제한없이 수임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법무법인은 사건처리의 공정성을 위해 양측 당사자의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들이 알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공유하는 일이 없도록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다. 개정안은 또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공직 재직시 담당했던 사건이라 하더라도 법무법인 내의 다른 변호사는 해당 사건을 수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정내용은 포펌을 포함한 변호사의 ‘쌍방대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한 현행 변호사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변호사법 31조는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는 하나의 변호사로 간주한 뒤, 수임하는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다른 사건의 수임을 금지하고 공무원·조정위원·중재인으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을 변호사로서 수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형 로펌의 경우 업무분장이 잘 돼 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에도 서로 협의하지 못하도록 내부장치가 돼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나 시민단체 등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양 당사자를 동시에 대리하지 않는 것은 변호사의 기본적인 직무”라며 “로펌이라고 해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어 최종 도입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변협 내부에서도 “변호사의 기본적인 의무조차 도외시한 졸속 개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로펌 수임제한 완화방안 왜 나왔나= 소속변호사 개인의 이해상충 문제로 사건의 성격과 무관하게 로펌의 사건수임이 제한돼 왔다. 실제 최근에는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등을 수사한 삼성특검팀의 조대환 특별검사보(52)가 삼성특검 공판에 참여하고 있던 사이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L로펌이 삼성의 계열사인 삼성SDS와 삼성화재의 소송을 맡아 논란이 될 정도로 로펌의 쌍방대리 논란은 수없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로펌들은 로펌 수임제한 완화 등을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다. 변호사수가 100여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속 변호사 개인들의 이해상충 문제로 수임을 제한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규제라는 이유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규제가 로펌의 대형화와 전문화를 가로막는 폐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변협 관계자는 “변호사 수 100명 이상의 대형 로펌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속 변호사들의 이해상충 사건을 모두 제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며 도입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변호사가 아닌 로펌의 쌍방대리 규제는 개념도 모호하기 때문에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큰 반면, 변호사들의 직업윤리를 상실하게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찬반논란 거세 도입까진 진통예상= 즉 대표변호사와 구성원 변호사를 정점으로 하나의 조직체처럼 움직이는 로펌내에서 이해상충 사건에 대해 스스로가 비밀준수 의무를 제대로 지켜낼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변협이 마련중인 변호사윤리장전 개정안에는 ‘로펌내의 변호사간에 의뢰인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합리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합리적인 조치가 무엇인지 전혀 규정돼 있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재야 법조계의 한 인사는 “대형로펌의 경우 인수합병, 금융, 증권, 세무, 노무, 지적재산권팀 등 수십 명이 한 개 팀으로 투입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비밀이 지켜지겠냐”고 반문했다. 소속 변호사가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맡았던 사건을 법무법인 내의 다른 변호사가 수임할 수 있도록 한 규정 역시 변호사로서의 ‘윤리’를 도외시한 규정이라는 지적이다. 민변의 한 변호사는 이와 관련 “공정위나 국세청 등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대형 로펌의 영입이 급증할 것”이라며 “이는 정부정책과도 역행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중소형 로펌들 역시 대형 로펌의 싹쓸이 사건수임 우려 때문에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특히 변협이 나서서 대형로펌의 이해를 반영한 것에 대해 강한 반발 조짐도 생겨나고 있다. 소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지난 수년간 대형 로펌들이 주장해 온 내용이 그대로 반영됐다”며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로펌의 대형화는 필수적이지만, 중소형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의 입지는 더욱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대형 로펌들이 사건 처리의 공정성과 의뢰인의 이익 보호가 담보되도록 ‘차이니즈 월(chinese wallㆍ이해상충방지체제)’을 체계적으로 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변호사윤리장전은
현행 변호사법의 부칙… 겸직제한·품위유지등 포함
개정안 내년 2월께 총회서 과반수 이상 득표땐 효력 변협이 이번에 개정을 추진중인 변호사윤리장전은 의뢰인(고객)에 대한 의무를 규정한 변호사법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법으로 규정하기에 부적당한 변호사의 직무수행 규칙을 정한 것이다. 윤리장전은 변협이 변호사 징계를 위한 근거규정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행 변호사법의 '부칙'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윤리장전에는 변호사의 사명과 기본윤리, 공익활동과 품위유지, 겸직제한 등 직무윤리, 쌍방대리, 수임거절 등 의뢰인에 대한 윤리 등이 포함돼 있다. 윤리장전의 근거법인 변호사법은 지난 8년간 7차례 개정되면서 변호사윤리를 강화했지만, 윤리장전은 2000년 이후 한차례도 개정되지 않아 지나치게 선언적이고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대한변협은 지난 2년간 변호사윤리규정이 법무법인의 대형화와 변호사 수 증가 등 급속히 변화된 법조환경을 반영하기에는 미흡하다는 판단 때문에 개정작업을 펼쳐 왔다. 이번 개정안 초안은 내년 2월께 열릴 변협 총회에 상정돼 회원변호사 과반수 이상을 얻으면 통과돼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변호사가 윤리장전을 위반하면 대한변협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불성실 변론이나 사건을 소개해주는 대가로 브로커들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알선료 지급, 변호사광고규정 위반, 과다한 성공보수 요구, '쌍방대리' 등 수임규정 위반이 징계사례의 대부분이다. 징계의 종류는 사안에 따라 견책, 과태료, 정직 등으로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