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남덕우 전 총리에 들어본 새대통령 국난극복 과제

◎“공약집착말고 소신껏 구조개혁하라”/IMF협약안 조속입법화… 금융자주성 확립을/금융안정이 최우선 과제/금감원·한은 독립성 보장부터/기업구조조정 점진적 추진을미증유의 경험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도 불구,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경제혼란, 50년만의 첫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등 지금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경륜있는 원로의 뼈아픈 고언 한마디가 새삼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덕우 산학협동재단이사장(전 국무총리)에게서 차기 대통령이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 현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 등을 들어봤다. □대담:신상석 국차장겸 정경부장 ­먼저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가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중의 공약을 잊어버려야 명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선자는 즉각 선거공약을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또 국민들은 당선자의 공약은 어디까지나 국가 형편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하겠다는 말이었던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대통령은 명확한 우선순위의 감각을 가지고 시급한 일부터 처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최우선과제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고 그 중에서도 최우선과제는 금융을 안정시키는 일입니다. ­금융안정화를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당선자가 이미 천명한대로 정부가 IMF, 세계은행 등과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하여 최단시일내에 필요한 입법조치를 완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을 방문할 생각이라면 입법조치를 완료하고 떠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약속을 행동으로 보인 다음 협력을 요청해야 상대방이 진심으로 돕겠다는 결심을 할 것입니다. ­당선자는 어떠한 각오로 경제난 타개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차기 대통령은 실로 무거운 짐을 짊어졌습니다.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작업에는 심한 고통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격렬한 반대, 갈등, 마찰, 정략적 공세, 사회적 혼란 등이 예상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자는 강철같은 의지로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가며 구조 개혁을 실현해야 합니다. 임기중에 어떠한 비난을 받더라도 후일에 가서 그의 지도력과 성과를 평가받을 각오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차기 대통령의 역사적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국민에게 어떠한 희망을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지금의 구조 개혁이 21세기의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만드는데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시키고 개혁에 성공하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질서와 활기차고 경쟁력이 있는 경제로 재도약할 수 있다는 신념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와 국민에게 그러한 신념이 없으면 이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습니다. ­IMF가 요구하는 구조개혁은 주로 금융부문에 편중되고 있는데 금융개혁의 근본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아주 중요한 질문인데 우리 금융의 근본문제를 확실히 파악하지 않으면 금융개혁에서 핵심 부분을 빠트릴 우려가 있습니다. 금융개혁의 기본과제는 한마디로 금융의 자주성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우리의 금융 실태가 어떠합니까. 가령 은행장들이 재벌에게 연결재무제표를 요구해 본 일이 있습니까. 중복투자를 해도 그 투자의 타당성을 따진 일이 있습니까. 해외에서 그토록 많은 차입을 해도 상환능력을 평가해 본 일이 있습니까. 본업과 관계없는 부실기업을 인수하고 문어발식 투자를 확산해도 은행이 이의를 제기해 본 일이 있습니까. 총수의 말 한마디로 대형 투자가 결정되고 정치적 압력이 작용, 금융기관이 맹목적으로 그들을 따라가 결국 정치·금융·대기업 사이의 유착관계가 오늘의 금융 파탄을 가져온 것 아닙니까. 이러한 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금융의 편중, 중복투자, 과잉투자, 부실기업, 그에 따르는 자금의 낭비와 고금리 현상을 치유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금융자율화 시대인데, 금융기관이 그러한 자금의 오용을 막고 사회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책임지는 금융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결코 건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융제도와 관행의 일대 혁신이 필요한데 놀랍게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금융개혁 관계 법안에는 이 점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IMF의 권고에 따라 보완적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모양인데 그 내용과 결과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일입니다. 새삼 강조하거니와 이 기회에 위에서 말한 금융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면 우리는 그야말로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외국인의 은행 주식 보유 한도를 인상하며 내국인의 보유 한도도 상향 조정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재벌이 더욱 금융을 지배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조치를 동시에 취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수 요건을 종전과 달리하여 기업 집단의 연결재무제표상의 자본·부채비율 혹은 기타 건전성 지표에 결부시켜 허용 기준을 정해 놓으면 인수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산업과 금융의 독립성을 중요시 하는 영·미 계통의 나라에서는 차입금으로 은행 주식을 인수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인수할 만한 내국인은 없지 않습니까. 은행이 저 꼴이 된 것은 주인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재벌에라도 은행을 맡겨야 되지 않느냐 하는 주장도 있는데. ▲그 주장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여러 종금사가 파탄한 것은 결코 주인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 재벌들이 주인입니다. 종금사가 파탄한 것은 위에서 말한 경영의 자주성이 전무하고 정부의 감독 기능이 부실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 상태에 있고 단일 재벌이 주인이 되고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바람직하기는 내외의 신탁회사, 보험회사, 공익재단 등의 기관투자가들이 주식을 나누어 가지고 주주 이사회를 활성화하여 경영정책을 결정하고 감사 기능을 강화하여 경영 감독의 책임을 철저히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정부의 엄정한 감독 기능이 작동하고 있어야 합니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부실기업은 동전의 양면인데 부실채권을 예방하자면 기업의 구조조정이 또한 필수조건이라 생각됩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어떠한 방식으로 추진해야 하겠습니까.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점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IMF가 정부의 구제금융에 따르는 조건을 붙이는 것처럼 금융기관도 기업에 연차적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요구하고 합의된 계획의 실행 여부에 따라 융자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이 배후에서 은행의 여신관리 상태를 감시해야 합니다. 과거에 정부 주도로 그런 일을 시도해 보았으나 흐지부지되고 만 것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금융 감독기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금융감독원이 설립되는 것을 계기로 하여 금융이 그러한 일을 자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재무구조 개선계획은 합리적인 방법과 조정기간을 두어야 할 것인데 어쨌든 갱생이 불가능한 기업은 규모를 막론하고 부도처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새로운 금융질서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종래의 사례를 보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때문에 부도를 내야 할 기업도 부도를 내지 못하고 구제금융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폐단이 과연 없어질까요. ▲그래서 금융기관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것인데 금융기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독립한 금융감독원과 중앙은행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금융감독원에 정치적 압력이 들어가서 금융감독원의 위신과 기준을 흐리게 한다면 금융개혁은 하나 마나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융감독원과 중앙은행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시장의 규율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시장 규율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잘 못하는 은행은 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새해의 경제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일대 시련기가 될 것입니다. 소비가 위축되고 물가가 오르며 기업 도산이 늘어나며 실업이 많아질 것입니다. 반면에 수출이 회복되고 재고를 채우기 위한 생산이 늘어나며 국제수지는 호전될 것입니다. 환율과 금리도 안정될 것입니다. 결국 구조조정과 경제회복의 속도는 신임 대통령의 식견과 개혁의지, 정치권의 협조, 그리고 국민들의 인내와 협력에 달려있다 하겠습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정리=이세정·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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