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러 슈퍼루블화/윤찬혁 대우경제연 연구위원(서경포럼)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8월4일 발표를 통해 98년 1월1일자로 신루블을 도입하는 화폐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화폐개혁조치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루블화의 액면금액에서 천 단위를 삭제한 슈퍼 루블인 신루블권을 도입하는 것이 골자이다.이번 조치는 크게 3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98년1월1일부터 구화폐 1천루블에 상당하는 신루블을 도입한다. 둘째, 98년1월1일부터는 1천루블인 상품가격을 1루블로 인하한다. 단 98년말까지 구화폐와 신화폐가 모두 통용되는 상황을 감안하여 구화폐는 종전과 같이 1천루블을 지급해야 한다. 셋째, 지난 93년 7월의 화폐개혁 때와 같이 구화폐를 신화폐로 교환할 필요가 없으며 98년말까지의 사용기간동안 점진적으로 대체되도록 하며 2002년까지 모든 러시아은행에서 취급하도록 했다. 이번 조치로 내년 1월1일부터는 루블화의 가치가 명목적으로는 대폭 절상된다. 현재 러시아에서 유통되고 있는 루블화의 최고 화폐단위는 97년3월에 도입된 50만 루블인데 현재의 환율인 달러당 5천8백루블을 기준으로 하면 약 86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비현실적인 환율이었기는 하지만 92년 러시아가 경제개혁에 착수할 당시의 환율인 1달러당 0.55루블을 기준으로 하면 50만루블은 90만달러에 달했다. 90만달러에서 86달러로 러시아경제와 화폐가치가 급격히 추락했던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러시아정부가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바닥권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있는 자국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95년 중반이후 지속되고 있는 루블화 가치안정과 인플레 진정, 그리고 정부가 화폐 금융정책에 대해 강력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93년 연1천%로 최고조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율은 97년 6월에 연14.5%로 안정됐다. 러시아는 95년7월 관리변동환율제에 이어 현재 시행중인 Crawling Peg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루블화 가치를 안정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한때 물가폭등과 자국화폐가 휴지조각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러시아 국민들조차 달러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 달러가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러시아 경제의 「달러화(Dollarization)」우려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더구나 러시아는 97년 상반기동안 산업생산이 0.8% 증가함으로써 92년이래 5년간 지속된 산업생산 하락추세가 처음으로 증가세로 반전됐다. 이번 조치가 러시아 경제나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나 몇 가지 관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국민들의 생활에 대한 충격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신구화폐 공동 유통기간이 길기 때문에 지난 93년의 개혁 당시와 같이 구루블 사용불능으로 인한 루블화에 대한 신뢰가 손상될 가능성은 단기적으로 적다. 당시에는 2주일동안 최고 3천5백루블만 교환하도록 하고 구화폐 유통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루블화에 대한 신뢰가 크게 손상을 받았다. 러시아경제 회복을 이끌고 있는 IMF도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현 단계에서 신화폐도입이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루블화에 대한 신뢰와 함께 이번 조치의 성공은 물가불안 심리의 재연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물가불안은 화폐수요증가, 화폐 발권량 증대, 그리고 다시 물가불안으로 이어지는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루블화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화폐개혁조치가 일반 주민생활에 미칠 심리적인 영향과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화폐가치의 축소규모가 1천분의 1이라는 것이다. 가격자유화이후 물가가 폭등하자 러시아 국민들은 종전 루블가치를 바탕으로 통상 숫자를 말할 때 천단위는 빼고 말한다. 예를 들어 1만루블이면 「제샷(10) 뜨이샤치(천)」이나 뒤의 천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현실이어서 화폐개혁 이후에도 종전과 같은 거래를 하는 것으로 느껴져 일반 국민들의 심리적인 충격이나 혼란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의 대러 수출환경이나 투자환경에 미칠 영향은 아직 미지수이다. 만약 이번 조치의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돼 물가불안 현상이 나타날 경우 러시아인들의 선구매현상 및 물자부족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물가불안현상이 지속될 당시 러시아인들은 인플레에 대비해 한국의 수출 주종 품목인 전자제품과 같은 내구소비재수입에 열을 올린 바 있다. 한국의 대러시아수출은 95년과 96년에 각각 47.2%와 39%가 증가한 후 금년 1∼5월중 전년동기대비 25.4%나 감소했다. 이는 주된 수출품목인 전자제품의 수출이 급감했기 때문인데 이번 조치이후 단기적으로 수출기회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바 사태전개과정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투자자는 러시아인과 마찬가지로 자산가치에 별 변화가 없고 장기적으로 러시아경제의 안정화를 반영하는 것인 바 투자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러시아 화폐가치의 변동을 주시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약력 ▲60년 경남 출생 ▲경희대 정치학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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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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