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미래로 세계로··· 글로벌 무대서 함께 뛴다 <1>분업적 상생이 경쟁력 열쇠

동반진출 협력사에 노하우까지 전수<br>LG전자, 파인알텍 폴란드공장 조기완공 적극지원<br>기아車, 슬로바키아 수상만나 협력사 지원 받아내<br>한국타이어, 中서 협력업체 세양공장 기술개선 도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글로벌 상생은 국내 산어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되고 있다. LG전자의 폴란드 LCD TV 생산공장에서 현지인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폴란드인들은 한겨울에 무슨 공사를 벌이냐며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더군요. 몇시간 만에 얼어붙는 땅을 녹이며 공사를 강행하자 현지인들은 한국인들을 다시 보게 됐다며 놀라더군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쪽으로 130㎞ 가량 떨어진 므와바시에서 LCD TV용 외장재(커버)를 생산하고 있는 파인알텍(FineAltech)의 이동식 므와바법인장은 지난 2005년 겨울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해 LG전자와 함께 므와바에 진출한 파인알텍에게 6개월 안에 공장을 세워야 한다는 특명이 떨어졌다. LG전자 LCD TV 생산라인을 조업 일정에 맞추자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난데없는 혹한이 공사를 가로막았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 땅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30㎝ 가량 쌓여있는 눈 아래로 1m가 넘게 땅이 얼어버리자 기존의 건설장비로는 20㎝조차 파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현지에서는 통상 12월이면 모든 공사를 중단하기 마련이지만 파인알텍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대형 온풍기 20대와 비닐하우스까지 동원해가며 일일이 언땅을 녹이면서 공사를 진행시켰다. 이 법인장은 “당시는 현지인들에게 미쳤다는 얘기까지 들었다”면서 “공사를 꺼리는 현지 건설업체에는 만약 사고가 나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회고했다. 파인알텍의 성공적인 공장 가동에는 LG전자의 숨은 조력도 컸다. 현지 사정에 맡길 경우 수년이 걸릴 공장 건립을 단 4개월20일 만에 완료했던 LG전자는 시행착오를 거쳐 축적해 둔 대관 협상, 공사 진행 등의 노하우를 현지 협력업체에 아낌없이 전수했다.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한 배려에서다. 노석호 LG전자 므와바법인장은 “?은 공기를 감안해 LG전자에서 미리 부지해 둔 부지를 제공해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며 “LG전자 법무팀이 공사와 관련한 인ㆍ허가 과정에도 뛰어다녔다”고 밝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한마음으로 뭉쳐야만 현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성공적인 시장 공략도 가능하다.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진출한 세원ECS 등 기아차 협력업체 11개사는 지난해 12월 날아든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기아차가 현지 정부와 2년3개월간의 줄다리기 끝에 파격적인 협력업체 지원방안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들 협력사들은 당초 기아차와의 동반 진출과정에서 슬로바키아정부로부터 각종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받았지만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전면 백지화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슬로바키아 수상을 면담한 데 이어 정의선 기아차 사장까지 설득작업에 나서 가까스로 현지 내각의 승인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한창균 기아차 질리나법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정 사장이 직접 슬로바키아 경제부 장관과 면담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자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고 설명했다. 협력사들의 오랜 숙원을 그룹 최고 경영진이 직접 해결해 준 셈이다. 이 곳에서 살펴본 기아차의 협력사 지원은 한마디로 ‘Me too’이다. 기아차는 협력사들이 현지에서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지원시스템을 갖춰 ‘Me too’만 외치면 각종 인ㆍ허가와 구인, 물품 구매, 법률 컨설팅 등 현지에서 필요한 모든 절차와 서비스 등을 기아차와 똑같이 해결해주고 있다. 박승길 세원ECS 법인장은 “각종 대관업무와 인센티브 협상, 양해각서(MOU) 체결, 공장부지 선정 등 제반 업무를 기아차를 통해 해결했다”면서 “기아차의 도움으로 시행착오와 불필요한 시간 및 비용을 줄인 만큼 공장 가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이 같은 글로벌 상생협력은 이제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서로 믿을 수 있는 ‘사이(in-between)’로부터 창출해내는 경쟁력만이 유일하게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타이어시장을 씽씽 달리고 있는 한국타이어 상하이공장은 협력사의 품질수준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다. 상하이에서 한시간 떨어진 쟈싱 개발구내 공업단지에 조성된 협력업체 세양 공장에는 틈만 나면 한국 타이어의 구매팀이 고무제품의 품질을 깐깐하게 검사하고 있다. 5단계 평가 리스트에 점검사항을 적고 난 후 재고 공장까지 둘러보는 모양이 심상치 않을 정도였다. “연간 3~4회 나오는 공식 보고서에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면 당장 개선보고서가 날아온다”고 세양 관계자는 전했다. 해외에서 맺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탄탄한 신뢰는 쉽게 흔들림없는 거래관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상하이 외곽에서 활동중인 SKC의 협력업체 세신은 생산제품의 90% 이상을 삼성과 SK에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는 LCD를 제품 크기에 맞게 잘라 납품하고 있는데 승인절차도 번거롭긴 하지만 굳이 신규 거래처 발굴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남상일 세신 공장장은 “발주회사의 기밀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협력업체가 감내해야 할 사항”이라며 “공생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상호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일찍이 “지구적 차원의 경쟁에서 가장 의미없는 성공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다 만들어내던 때는 지났고 상생경영이야말로 21세기형 기업의 생존전략이라는 얘기다. 오세광 KOTRA 바르샤바무역관장은 “동구에 협력업체와 동반진출한 대기업은 상생협력 체제를 갖추지 않고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은 이제 함께 뭉쳐야만 현지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차별화된 해외진출 상생전략
삼성전자 ‘네트워크형’··· 현지서 협력사 집중 육성
현대車 ‘수직통합형’··· 국내업체와 동반진출 '윈윈'
'네트워크형 상생협력 VS 수직통합적 상생협력'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해외 진출과정에서도 서로 상이한 전략을 선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문화된 소수의 중소협력사를 집중 육성하는 반면 현대차는 안정적 거래관계를 위해 전속 협력사를 다수 거느리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인도 수도 뉴델리의 위성도시인 노이다(Noida) 산업단지에 위치한 4만평의 삼성전자 인도공장. 현지 시장에서 LCD TV 점유율 50%, 모니터 점유율 1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낸 전진기지다. 삼성전자는 무엇보다 현지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협력업체와 함께 글로벌 상생을 추진하고 있다. 현지 협력업체 수만 따져도 무려 100여개사에 달한다. 이중 한국 협력사는 7개에 불과할 정도로 차별화된 상생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전자제품의 경우 워낙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생산부품 조달부터 철저한 경쟁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오석하 삼성전자 인도법인장(전무)은 "이들 7개사도 동반진출이 아닌 자체 경쟁력을 갖추고 협력업체 심사를 통과해 납품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현지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 경쟁력이기 때문에 한국업체라고 무조건 납품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협력업체 관리 덕택에 인도법인은 지난해 13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유영복 삼성전자 노이다공장장(상무)은 "컬러TV의 경우 하루에 1인당 70대를 만들어낸다"며 "노이다공장의 생산성이 전 세계 삼성 사업장중 1위를 차지한 것도 협력사 도움이 컸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1년부터 인도에서 사출공장을 가동중인 협력업체 인코텍은 지난해 매출 100억원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다. 이 회사는 생산제품의 90% 가량을 한국 기업에 납품하고 나머지 10%를 현지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김명보 인코텍 사장은 "로컬기업들과 철저히 경쟁시켜 발주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으면 생존하기 힘들다"며 "한국업체라고 잘 봐주겠지 하고 생각하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인도 첸나이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50분 정도 달리면 시코트(Sipcot) 공업단지가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다. 이곳에는 대지 65만평의 현대자동차 현지공장과 17개 자동차 부품업체가 들어서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최근 도요타와 포드 등 메이저 차업체들이 잇따라 공장을 세우면서 '인도의 디트로이트'로 불릴 만큼 자동차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임흥수 현대차 인도법인장(부사장)은 "지난 98년 상트로(한국명 아토스)를 생산ㆍ판매하기 시작한 현대차는 지난해 기준으로 인도 승용차 시장점유율 2위(18.5%)를 차지하고 있다"며 "1위 업체인 일본의 스즈키 마루티가 합작법인을 감안하며 단독 진출한 외국 자동차업체로는 사실상 시장점유율 1위인 셈"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가 인도시장에서 성공가도를 질주하게 된 것은 모든 생산차종의 현지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송현선 인도공장장(상무)는 "동반 진출한 국내 협력업체 17개사를 비롯해 인도 현지기업 등 총 82개사의 협력업체를 거닐고 있고 이중 트럭으로 1시간내에 수송이 가능한 업체는 전체의 60%인 49개사"라며 "이들 협력사에 대한 현대차의 구매비율은 약 85%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현대차의 인도내 주력차종인 상트로와 액센트 국산화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91%, 86%에 달한다. 경쟁사인 포드(60%), 혼다 (55%), 도요타(55%) 등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 도승환 코트라 첸나이 무역관장은 "진출초기부터 자국의 협력업체와 동반진출로 커다란 성과를 이룬 업체는 현대차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단독투자가 어려운 중소업체도 현대차와의 동반진출을 통해 해외 전전기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윈윈전략'으로 큰 성과를 얻고 있다. 차제부품 생산업체 일진은 현지에 100억원을 투자, 1만평의 부지에 공장을 건립했다. 도재학 일진 인도법인장은 "현대차의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45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며 "2010년 800억원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시트 생산업체인 한일이화의 이성회 인도법인장도 "생산품의 100%를 현대차에 납품하며 지난해 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며 "현대차의 기술지도 등에 힘입어 품질과 기술력에 대한 현지 기업들의 반응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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