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위기의 건설산업] <3> 민간이 활성화돼야 시장이 산다

규제에 묶이고 공공기관에 치여 '사면초가'<br>아파트 지으려면 41개 법률 ·140여개 규제 벽 넘어야<br>개발공사등 민간영역 야금야금… 하도급업체 전락위기<br>"건설사에 토지수용권 허용하면 집값 오히려 싸질수도"



“모든 아파트 옥상에 수변공원을 짓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건축심의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옥상은 수변공원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면 해당 업체는 속으로 ‘우리만 재수 없이 잘못 걸렸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택건설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교통영향평가심의ㆍ개발행위심의ㆍ도시계획심의ㆍ건축심의ㆍ건축위원회심의 등을 거쳐야 한다. 각각의 심의가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결정 과정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 한 시행사 관계자는 “심의 통과가 다수결로 되는 게 아니라 특별히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통과되고 한 사람이 끝까지 반대하면 다음으로 미루는 형식이어서 업체 입장에서는 고무줄 심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심의 때마다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불합리한 규제가 발목 잡는다=현재 주택건설사업 및 분양승인과 관련해 업체는 41개 법률과 140여건에 달하는 규제를 적용 받는다. 주택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교통영향평가ㆍ도시계획심의ㆍ건축심의 등은 점차 통합되는 추세로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업체들에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한 설계사 사무소 관계자는 “말로는 심의가 줄었다고 하지만 실제 작업을 하다 보면 중복되는 심사가 아직도 많이 있다”며 “건폐율을 줄이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겠다면서 입면적 규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규제도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문화재 지표조사, 학교용지 확보 등도 업체 입장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3만㎡ 이상의 면적에서 사업을 하는 업체는 문화재 지표조사를 받아야 한다. 사업 도중 문화재가 발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표조사 기간이 평균 3~6개월 정도 소요되고 조사비용도 시행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된다고 지적됐다. 대한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취지는 좋지만 지역적 특성에 관계없이 일률적인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용지 부담금 문제도 해묵은 과제다. 학교용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비용을 절반씩 부담해야 하지만 지자체 예산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가 대표적이다. 경기도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경기도교육청에 1조원에 달하는 학교용지 매입비 분담금을 납부하지 못하면서 교육청이 신규 주택건설사업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한강신도시 등 경기도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아파트 단지가 일제히 분양을 연기했다. 지자체ㆍ교육청 간 싸움에 민간 업체의 부담만 늘어나는 셈이다. 건설업체들은 또 주택사업용 토지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주택사업용 토지는 종합합산 대상으로 사업승인을 받아야만 재산세 분리과세 대상이 된다. 그러나 토지를 매입하고 사업승인을 받기까지 평균 5년 정도 시간이 걸리고 제조업의 경우 산업단지ㆍ공업 지역에 위치한 공장용지는 종부세가 부과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형평성에 어긋난 것으로 지적됐다. ◇민간 영역 파고드는 공공기관=여러 규제가 민간 업체의 발목을 잡는 사이 지자체 개발공사 등 공공기관은 점차 업무범위를 확장, 민간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기록한 매출액은 1조1,308억원으로 어지간한 중견 건설사보다 높은 수준이다. 경기도시공사ㆍ인천도시개발공사 등 수도권 지역의 개발공사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경기도시공사는 지난해 7,456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2000년의 1,087억원보다 7배 가까이 몸집이 커졌고 2003년 설립된 인천도시개발공사는 지난해 5,968억원의 매출을 올려 2004년 550억원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지방 개발공사는 대부분 해당 지역 주민의 주거안정을 위하거나 복지 향상,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중대형 아파트 시행을 맡거나 직접 아파트 건설까지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민간 업체가 이들 개발공사와 경쟁해서 더 싸고 품질 좋은 아파트를 공급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출발점이 똑같지 않다는 데 있다. 택지개발을 할 수 있다는 말은 토지수용권(토지를 사들일 수 있는 권한)이라는 강력한 힘이 부여된다는 말이다. 민간 업체가 수십, 수백 명의 지주에 대한 토지작업을 하는 동안 이들 공공 업체는 토지수용권을 통해 쉽게 땅을 확보할 수 있다. 공공기관은 또 감리 면제, 일부 인허가 절차 생략 등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땅을 쉽게 사고 사업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분양가 인하로 연결돼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민간 업체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실제 미분양이 속출하는 최근 침체기에도 7월 중순 주공이 남양주 가운지구와 광명 소하지구에서 내놓은 물량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높은 경쟁률로 마감됐다. 이형 대한주택건설협회 상무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공공기관이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게 이윤을 놓고 민간과 경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지자체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할 경우 민간 업체는 공공기관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하고 점차 설 땅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민간 활성화하면 가격은 더 싸질 수도=공공기관이 개발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공공이 개발해야 집값을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개발해서 집값이 싸진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토지수용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값이 싸진 것이다. 이는 민간 업체도 토지수용권을 갖게 된다면 집값을 지금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고철 주택산업연구원 원장은 “토지수용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집값이) 싸지고 비싸지고 한다”며 “오히려 공공기관이 택지개발사업을 민간과 경쟁하게 되면 택지조성비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토해양부는 오는 2010년부터 민간도 택지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공공기관이 독점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오다 보니 가격을 스스로 낮출 이유가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양희관 국토부 택지개발과 사무관은 “경쟁 도입을 통해 공공성을 충분히 확보하면서도 가격인하 효과를 거두는 것이 이번 방안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올해 말께 국토연구원이 민간의 택지개발 참여에 대한 용역 결과를 내놓으면 이를 바탕으로 3단계에 걸쳐 민간 참여를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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