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구도가 전혀 정립되지 않았던 올 초. 청와대 핵심 당국자는 “이회창씨를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엉뚱한 소리’로 치부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의 예견(?)이 현실화되고 있다. ‘선견지명’이었다는 역설적 분석까지 나온다. 대선을 50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지지율이 출마 선언도 하기 전에 일부 여론조사에서 25%를 넘어 대선전의 조연(변수)이 아닌, 주연급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이 당국자가 이런 예상을 했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분위기는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청와대 당국자는 4일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일부 조사에서 25%를 넘어섰다는 소식에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현재의 그림은 분명 이 전 총재가 단순히 ‘제2의 이인제’ 역할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게 됐고, 더욱이 막판 보수 세력의 단일화로 범 여권이 손도 쓰지 못한 채 정권을 내주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과 뽀족한 대처 방안이 없다는 자괴감마저 얼굴에 배어 나왔다.
이런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것 같다. 최근에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 대해 사실상의 지지 선언을 한 마당이지만, 이는 철저하게 대선전이 일대일(보수와 진보) 구도로 가야 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정 후보의 지지율이 이 전 총재에도 훨씬 밀리고, 최악의 경우 ‘이명박 대 이회창’의 양자 구도로 가는 것은 최악의 그림이고, 노 대통령으로서도 상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노 대통령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이 전 총재의 급 부상 소식에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청와대의 다른 당국자는 “현재의 지지율만 갖고 대선전을 그리는 것은 너무 이를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지금의 흐름을 바라만 볼 리는 없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정면으로 부딪쳤던 대선자금 문제 등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발언을 하고, 이를 통해 이 전 총재에 대해 각을 세움으로써 대선전을 삼각 구도로 만들어 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