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선장에만 돌 던지랴

권구찬 경제부장 /chans@sed.co.kr


억장이 무너진다. "어떻게 저런 일이…"라는 탄식에 앞서 분통이 터진다. 객실에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르는데도 "가만히 있어라.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는 안내방송. 그 사이 선장은 고교생을 비롯한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해버렸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상식 이하의 어처구니없는 안내방송을 그대로 따랐다. 300명이 조금 넘는 사망자·실종자 가운데 4분의3이 그들이다. 가슴이 미어진다.

사고 대부분이 그렇지만 최악의 조합이었다. 어느 하나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대참사로 연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안전 수칙과 비상 대피 매뉴얼을 지켰더라면, 선령을 30년으로 10년 늘리지 않았더라면, 인천에서 출발할 때 운항 관리를 제대로 따져봤더라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어디 실종자 가족뿐이겠는가.


재난당국이 보여준 아마추어 같은 초동 대처와 수습 과정은 또 어떻고. 사고 3일이 지나도록 탑승객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실종자와 구조자조차 구분하지 못한 당국의 무능과 미숙엔 화부터 치민다. 재난 총괄 부처인 행정안전부를 새 정부 출범 이후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꿨건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던 게다. 그저 탁상에서만 안전을 외쳤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진작부터 구멍 뚫린 대한민국의 안전은 서해 세월호 참사로 그렇게 한꺼번에 드러났다.

발가벗겨진 대한민국 안전 수준


애도와 격려를 보내던 세계 각국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조롱 섞인 지적이 등장한다. 국격을 거론하는 해외 언론도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류의 주역이 대단한 나라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먹거리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는 중국의 지적은 그래서 더 뼈아프다. 환구시보는 "한국처럼 현대화한 국가의 해상 안전 실태와 비상 대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뒤떨어졌다는 의문이 일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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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사는 국정 운영에 두고두고 부담이다. 하루가 시급한 규제 혁파 추진은 어지간해선 탄력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행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더라도 국회 벽을 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청와대가 규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각 이상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다. 지난 3월 규제 끝장 토론에서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은 원론이지만 제대로 짚었다. 박 대통령은 "규제는 양면성이 있다.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암 덩어리지만 복지와 환경, 개인정보 보호와 같이 꼭 필요한 규제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규제를 쳐부숴야 할 원수로 표현한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안전 문제마저 뒷전으로 밀어내버렸다. 규제 혁파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대통령의 어젠다로 부상한 까닭이다. 이런 프레임 속에서는 승객 생명을 담보할 선박 검사와 운항 관리, 선원·승객 안전교육 같은 기초적인 규범 강도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나올 턱이 없다.

외양간, 상식이 통하게 고치라

정부는 조만간 위기대응시스템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설 것이다. 사고 현장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강력한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 마련을 주문하고 관련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문책 방침을 밝혀 부분 개각 가능성까지 내비췄다. 뒤늦게 외양간을 고치겠다면 상식이 통하게 고쳐야 한다. 국민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어이없는 인재(人災)와 관재(官災)로 무고한 희생이 쳇바퀴처럼 되풀이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나 문제의 본질은 그것만이 아니다. 위기대응시스템의 정상화보다 중요한 건 예방이다. 연안 여객선 구조 개혁은 그 출발점이다. 선박 노후화와 선사 경영난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선원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 기피하는 3D 직종이고 선원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초인간적인 희생정신과 책임감에 인명을 맡겨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적자에 허덕이면서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라는 주문은 어쩌면 공허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내버스처럼 준공영화하자는 지적은 진작부터 제기돼왔다. 영세 선사를 한데 묶어 대형화하자는 방안도 같은 맥락이다. 국책 사업에 동원된 공기업이 수십조원의 혈세를 까먹는 것엔 분노하지만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연안 여객선의 구조적 문제는 사고가 터지지 않으면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선장에게 돌을 던지는 건 차라리 쉬운 일이다. 사고 이후 탄식하고 외양간 고치는 쳇바퀴 돌림은 이번으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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