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서울대 공대생 중 자퇴자가 올들어 5월 현재 90명에 이르고 있다는 소식은 정부의 이공계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자퇴자가 모두 50명 이었는데 올 1학기 중에 벌써 작년의 배에 육박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탈이공계를 노린 재수목적의 휴학생이 정원의 12%인 880명에 이르고 있는 것과 함께 이공계의 위기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같은 기간 법대생 자퇴자가 1명, 의대생 자퇴자가 2명에 불과하고, 사회대 인문대의 자퇴자도 10명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심각성은 더욱 명료해 진다. 공대 정원이 7,196명으로 가장 많기도 하지만 학생수에 비례할 때도 자퇴자 수가 월등히 많은 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서울대 만이 아니라 국내의 모든 대학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다. 서울대 공대 자퇴자 중 80명은 타대학에 입학했는데 사립의 의대나 한의대, 약대 등에 진학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공계 기피의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공계를 나와봐야 취직도 어렵고, 취직을 한들 다른 직종에 비해 보수가 낮아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이공계 대학생들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이공계 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원인이다.
이공계를 나와서 박사학위를 받은 30대의 과학두뇌가 20대 은행원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현실은 크게 잘못됐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함에 있어 이공계 출신들의 기여는 절대적이다. 그 같은 기여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더욱 절실하다. 한국의 미래는 기술개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면 기술의 질적 저하는 필연적이고,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공계 출신들이 사회적 대우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기술인력이 교육 및 연구분야 외에 기업과 정부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야 한다. 특히 이공계 출신의 경영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 아울러 경영자의 기준에서 이공계를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인 편견도 고쳐져야 한다. 기술의 전문성은 경영의 전문성을 살리는 첩경이다. 정부나 민간기업의 경영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은 경영이 전문성 보다는 각종 연(緣)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이공계 정원관리도 뽑아놓고 보자는 식에서 정예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필요도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중장기처방과 함께 예산부족이나 부처간 이견으로 시행이 오락가락하는 각종 이공계 지원방안을 착실히 시행하는 실천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최원정 기자 abc@sed.co.kr>